[해외 법률 산책] 뉴욕, 소음과 전쟁 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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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12면

뉴욕에서는 조깅할 때나 출퇴근할 때, 심지어 일을 할 때도 아이팟을 귀에 꽂고 다니는 시민이 많다. 그런데 볼륨을 높여 듣는 경우가 많아 본의 아니게 옆에서 음악을 함께 들어야 할 때가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뉴욕 지하철은 휴대전화가 불통이어서 전화 소음은 없지만 음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하지만 옆 사람에게 볼륨을 낮춰달라고 좀처럼 요구하지 않는 점은 이상하다. 뉴욕에서 소음 관련 민원이 제기되는 게 해마다 4만 건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뉴욕 시민들도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제 뉴욕에서도 이런 상황이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될 것 같다.

뉴욕시는 7월 1일부터 개정된 소음규제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을 때는 5피트(1.5m) 떨어진 승객이 듣지 못하도록 볼륨을 낮춰야 한다. 야외공원이나 공공장소에서는 25피트(7.6m) 떨어진 곳에서 소음이 들리면 단속 대상이다. 볼륨을 높여서 달리는 자동차도 단속 대상이다. 애완견은 야간(오후 10시~오전 7시)에는 한 번에 5분 이상을, 주간(오전 7시~오후 10시)에는 한 번에 10분 이상 짖으면 주인이 단속된다. 그 외에도 공사장 소음,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에서 새어 나오는 소음도 단속된다.

과거에는 ‘보통 청각을 가진 사람이 견디기 힘들 정도의 소음’을 기준으로 위반 여부를 판정한 까닭에 기준이 불명확했으나 개정된 소음규제법은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뉴저지주의 저지시티에서도 7월 17일부터 비슷한 법을 시행 중이다.

소음은 생활의 일부로서 대부분의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지만, 시민의 건강을 해치고 심혈관에 영향을 미쳐 수면부족을 야기한다.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며 보행하는 사람은 자동차 경적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시민의 건강과 안전과 복지,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위해, 그리고 뉴욕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음규제법을 제정한 것은 공감이 간다.

하지만 소음단속기와 스톱워치를 들고 다니며 보행자와 아파트 입주민을 단속하는 모습은 보기에 흉하다. 필자가 뉴욕에 유학 중이던 2005년에는 지하철에서 쇼핑백·가방을 옆자리에 놓아 두 좌석을 차지하거나 지하철 운행 중 옆 차량으로 이동하는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이 시행됐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엄격히 집행하는 미국의 한 단면이다.

한국에서는 악기·텔레비전·전축 등의 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내거나 큰 소리로 떠든 사람에게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해 처벌한다. 그러나 원칙적인 내용만 법에서 규정하고 사람들이 예의 차원에서 준수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탄력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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