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 이명박, 남북 정상회담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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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나라당이 10월 2~4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을 차기 정권으로 연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선출된 지 하루 만에 나온 공식 입장이다. 청와대와 범여권이 이를 강하게 반박하고 나서 정상회담 시기 문제가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8.28 정상회담의 연기 이유가) 수해 때문이라고 하지만 의제에 북한 핵문제 등이 분명하게 들어갈 것 같지 않고, 또 정상회담이 자꾸 연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나라당의 입장은 가능하면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차기 정권에서 (회담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어 "최악의 경우에라도 대선 이후 당선된 대통령과 협의 하에 남북 정상회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북측에)정말 시급한 사안이 있다면 꼭 평양이 아니라도 개성이나 금강산에서 회담을 하자고 했을 것"이라며 "어차피 남북 정상이 합의해도 집행은 차기 정부 몫일 수밖에 없으므로 명실상부한 회담이 되려면 차기 정부에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가세했다.

이명박 후보도 이날 오후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한 자리에서 "의제를 분명히 정하지 않고 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해 버리면 이를 이행해야 하는 차기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며 "북핵을 폐기하지 않고 정상회담을 해 버리면 핵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에 대해 통일부 장관이 말하는 것을 보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10월 정상회담이 범여권 후보에 유리한 '대선용 이벤트'로 활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는 즉각 한나라당 요구를 거부했다. 천호선 대변인은 "시대를 거꾸로 가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권을 잡으려면 과거를 붙잡지 말고 미래를 봐야 한다"며 "(한나라당은) 비핵화와 평화로 가는 것을 가로막겠다는 것인지, 모든 것을 대선에서의 유불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또 "한나라당은 정상회담 방북단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거부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아직 선거도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좌지우지하고 국가체계를 무시하는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신당의 이낙연 대변인도 "이명박 후보가 정해지고 맨 처음 나온 정책이 고작 이것인가. 공연한 트집이다.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정상회담 연기 요구가 얼마나 강하게 지속될지는 이명박 후보의 의중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가 연기 요구를 강력히 주문할 경우 한나라당과 노무현 정권 간의 정면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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