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을찾아서>정진규씨 시집 몸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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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시는 지성이 아니라 정서입니다.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펄펄 살아있는 자연속의 비유.상징을 몸으로 받아들여 짜릿한 감동으로 전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요즘 시는 너무 머리로만 쓰여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계산해서 만들어진 비유.상징등이 시의 현대성.세련성으로 평가되고 있지요.그러다보니 요즘의 시에서 사람의 냄새,자연의 냄새를 맡기 힘든 겁니다.』 鄭鎭圭씨(55)가 시집『몸詩』(세계사刊)를 펴냈다.60년 東亞日報 신춘문예를 통해 시단에나온 鄭씨의 아홉번째 시집인『몸詩』에는 몸으로 받아들인 일상적삶과 자연에 대한「몸詩」연작 78편이 실려있다.
『언제나 主體語보다 수식어가 먼저인 삶을 우리는 살아왔다/4.19란 말 앞에 오늘,/나는 왜 감격이란 말을 놓지 않는가 절대!/새를 날리지 않는가/역사는 희석식인가 증류식인가/4.19는 희석식 소주인가 증류식 소주인가/그날 이후 나는/서른 해를 넘게 희석식 소주만을 마시면서 살아왔다/이제는 그럴 수 없다 증류식 소주가 마시고 싶다/마침내 풀잎 끝에 맺히는/한방울의 순결,그게 증류식 소주이다/역사는 증류식이어야 마땅하다/이제는 그럴 수 없다/우리는 오늘 증류 식 소주가,진짜 소주가 마시고 싶은 사람들이다.』 「몸詩.30」의 일부다.4.19가 일어났던 60년 鄭씨는 문단에 나왔다.「풀잎 끝에 맺히는 한방울의 순결」들이 모여 강물을 이뤘던 4.19는 그러나 5.16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짓밟힌 순수를 달래며 살 아온「희석식 세대」가 4.19세대라고 鄭씨는 말한다. 그러나 이「희석식」이라는 것이 단순히 한 세대만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태어나서 자라 사회에 편입되는 생애의「入社式」에도 비유될 수 있다.어린 시절,세계와 갈등없던 시절의 나와세상은 얼마나 순결했던가.
그러나 세상에 나와 이러저러한 사람살이에 닦이다보면 어린 시절의 순결성은 적당히 희석되게 마련이다.
원초적 의미로 바라보던 세상은 어느덧 사회적 의미망으로만 포착되고 만다.시와 같은 예술을 통해 원초적 세계를 붙잡으려 하나 그 역시 옛부터 켜켜이 쌓아온 문화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鄭씨의 「몸詩」의 몸은 육체와 영혼,현실과 순수를 함께 담고 있는 몸 그 자체다.그러한 우리의 몸이 감지한 세계를 곧이곧대로 담고 있는 것이「몸詩」연작이다.
『낙산 의상대 가서 바다에서 뜨는 해를 새롭게 만났다 어둠과이미 한평생 잘 살고 나온,한살림 차렸던 흔적이 역력한,이미 싸움을 끝낸,피 냄새가 나지 않는 해를 새로 보았다』는 「몸詩.86」에서 볼 수 있듯 우리의 일상적 삶을 끌 어안고 그 자질구레한 흔적들을 역력히 보여주면서 그 안에 포함된 원초적 순수,혹은 순결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는게 시집『몸詩』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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