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뒤 단합" 13차례 다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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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48개 투표소에서 실시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투표 결과를 담은 투표함들이 19일 밤 개표 장소인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도착했다. 20일 실시될 개표를 앞두고 선관위 직원들이 투표함과 서류를 점검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이명박 후보는 18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경선에서 패배할 경우 박근혜 후보와 힘을 합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유세를 13차례 하는 과정에서 후보들이 모두 (단합을) 약속했다. 나 자신이 앞서 약속을 지키겠다"고 답했다.

이날 오전 박 후보도 기자들에게 "(경선 뒤 단합은) 13차례의 유세에서 매번 선서한 내용이다.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정권교체를 위해 나간다는 것은 지상명령"이라고 강조했다.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후보의 탈당을 막지 못해 정권을 내준 이후 한나라당에서 '경선 불복'이란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금기가 돼버렸다. 이 때문에 빅2 캠프 어디에서건 공식적으로 "경선에 지면 상대 후보 안 돕는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당내에서 끊임없이 경선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빅2 양측이 분열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1년이 넘는 레이스 과정에서 양측은 싸울 대로 싸워 후보 본인들의 감정이 심하게 상해 있다. 양측의 지역적 기반도 수도권(이 후보 강세)과 영남권(박 후보 강세)으로 딱 나뉜다.

게다가 내년 4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구마다 양측이 '사설 위원장'을 모두 심어놔 사실상 공천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내년 총선은 신임 대통령의 인기가 절정에 올라 있는 시기에 실시되므로 만약 빅2 중 누구라도 집권을 하면 친정체제 구축을 위해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양 진영 모두 "경선에 지더라도 흩어지지 말고 뭉쳐서 남아 있지 않으면 정치생명이 위태롭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 당을 균열로 이끄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선 결과의 표차도 중요하다. 어느 한 쪽이 압승을 거둬 패자가 결과에 군소리를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면 급속히 승자 쪽으로 대세가 쏠리겠지만, 박빙의 승부가 되면 패한 쪽에서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곧바로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가령 박 후보 측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투표용지 폰카 촬영'사건이나 이 후보 측이 문제 삼은 '이 후보 비방 유인물 배포 사건'등이 경선 불복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물론 현행 선거법상 경선에 진 후보는 탈당을 해봐야 본선에 나갈 수 없게 돼 있다. 그래서 경선 결과에 불만이 있더라도 패배한 캠프가 탈당과 같은 즉각적인 행동을 벌이긴 쉽지 않다. 다만 이후 승리 후보가 지지율이 하락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의 일이 벌어지면 당이 시끄러워질 공산이 크다. 패배한 후보 측에서 '후보 교체론'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출된 후보가 자진 사퇴하거나 탈당하면 경선 탈락 후보에게도 본선 출마의 길이 열린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경선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면 선출된 후보가 선대위 구성 때 탕평인사를 통해 상대 캠프 인사들을 대거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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