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화 전통 숨쉬는 회화의 교과서-한국화가 3인 정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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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高麗佛畵특별전』에 미술계의 깊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특히「전통의 현대화」라는 과제를 안은 한국화작가들은 고려불화에 대해 남다른 감동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 한국화작가들이 고려불화에서 읽어내는「전통의 깊이 와 의미」는 무엇인가.한글세대작가들인 金炳宗(41.서울대).文鳳宣(33.인천대)교수,金植씨(42)는 7일 오후 고려불화전을 둘러보고「고려불화의 전통을 현대 한국화 작품속에 어떻게 접목시킬수있는가」를 모색해보는 鼎談을 가졌다.
[편 집자註] ▲金炳宗=이처럼 高麗佛畵를 집중적으로 자세히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묘사와 기량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불화는 단순히 종교화만이아니며 우리 회화사상 귀중한 전통을 담고 있는 그림입니다.
▲文鳳宣=저의 첫인상은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특히 高麗佛畵의 정교함을 대하고는 같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 옛 佛畵僧들에게 머리가 절로 숙여지는듯한 기분이었습니다.
▲金 植=高麗佛畵는 우리가 말로만 강조해왔던 전통의 견고함을재확인해 주고,나아가 전통에의 믿음을 되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高麗佛畵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무엇이 우리 전통인지 잘모르겠다는 의구심의 하나는 불식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金炳宗=소재와 내용은 다르지만 채색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高麗佛畵는 고구려벽화나 조선시대 民畵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농채화임에도 高麗佛畵에서는 수묵담채화처럼 맑고 명징한 분위기를 느끼게 돼요.그것이 우리 전통채색화의 정통 성이 아닐까합니다. ▲文鳳宣=정신적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고 지적하셨는데저 역시 정신성이야말로 우리회화를 관류하는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묘사에 충실하면서도 그 속에 정신성을 담는다는 것이 한국화에 요구되는 전통의 현대화방향이 아닌가 합니다.
▲金 植=저는 그런 정신성을 정성이 담긴 그림,혼이 담긴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高麗佛畵를 그린 인내심과 끈기를 요즘그림에 넣는다면 혼이 살아있는 좋은 작품이 나올수 있겠지요.
▲文鳳宣=공들여 잘 그린 그림은 세월을 뛰어넘어 후세에도 좋은 작품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은 젊은 작가로서 특별히 새겨두고 싶은 부분이었습니다.불화의 철저한 작업태도는 저 뿐아니라 많은작가들에게 교훈이 될 겁니다.
▲金炳宗=저는 高麗佛畵의 섬세함과 정교함이 도상재현에만 그치지말고 중국처럼 道釋인물화나 禪畵로 이어졌다면 조선시대 문인화와 연결되어 더욱 풍성한 회화전통을 남겼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金 植=김선생님은 활달하면서도 정치한 筆力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듯합니다.저도 0.1㎜도 안되는 선들이 중간에 떨림이나 이은 흔적 없이 자연스럽게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오랜기간 필력수련을 쌓았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文鳳宣=제가 만봉스님에게서 불화를 배우며 들은 얘기인데,입문해서 초본을 1천번 베끼고 초본을 덮고나서 또 1천번을 그리고 그다음 채색하면서 1천번을 그려 도합 3천번을 되풀이해야 비로소 불화를 그릴수 있다는 것입니다.불화를 그리 는데는 그만큼 필력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金炳宗=뉴욕에서는 서른살전에 성공하지 못하면 보따리싸서 떠나야 하고,중국에서는 쉰살이전에 붓을 드는 것을 금물로 여긴다고 합니다.만봉스님식으로 필력을 쌓을 수는 없겠지만 중간과정을생략한채 발상이나 아이디어만으로 승부하려는 요즘 작가들에게 高麗佛畵에 보이는 필력은 기본기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었으리라생각합니다.
▲金 植=저는 高麗佛畵를 보면서 재료의 문제를 생각해 봤습니다.수백년이 지나도 박락은커녕 생생한 색감을 유지하고있는 점은재료나 기법문제를 등한시하는 요즘 작가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대목일 겁니다.
▲金炳宗=마지막으로 정리하면 이번 高麗佛畵전은 우리회화의 특징,예컨대 정신성.정성.완벽한 기법.재료 등을 작가들에게 재확인시켜준 전시였다고 생각합니다.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는 우리 전통속에 高麗佛畵와 같은 훌륭한 텍스트가 있다는 자 신감을 심어준 것일 겁니다.
[정리=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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