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김두우가 본 정치 세상] 大選을 닮아가는 '총선 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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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대선 때의 양상이 2004 총선 국면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각 당의 전략과 선거에 임하는 모습이 그렇고, 지지세력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란 말이 실감난다. 대선 후 각 당이 성형수술을 했지만 얼굴만 바꿨을 뿐 머리와 가슴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권의 행보를 살펴보자. 우선 '낡은 정치와 새 정치의 대결'이란 대선 구호는 총선 구호로도 사용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 결과가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을 상쇄해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벌써 '비교우위' 논리를 개발했다. 티코와 벤츠, 닭서리와 소도둑 비유가 그것이다.

'안티(Anti)-'전략은 대선 복제판이다. '안티 조선''반미'가 그것이다. 대선에서 "반미면 어떠냐"는 식의 盧후보의 미국관은 대선 막바지 의정부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와 접목됐다. 최근 외교부 직원들의 대통령 폄하 발언을 계기로 불거진 정부 외교안보 라인 내 '한.미동맹파'와 '민족자주파'의 갈등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386세대에겐 자주란 말은 반미와 맞닿아 있다. '반미 자주화'는 1980년대 학생운동의 핵심 구호 중 하나였다.

청와대는 지난 16일 조선일보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검찰을 두 번은 갈아 마셔야겠지만…'이란 보도를 문제삼았다. 여기에 조선일보의 청와대 개별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는다는 강경조치가 덧붙여졌다. 외교통상부와 조선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은 다소 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총선 전략적 고려가 작동된 건 아닐까. 이게 반미감정을 가진 세대, '안티 조선'에 동조하는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로 다가갈지 분명하기 때문이다. "적개심과 동정심만큼 유권자에게 전파력이 강한 감정은 없다"는 게 정치권의 통설이다. 그러면 (反 이회창) 후보 단일화는 17대 총선에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그 전략은 이미 가동됐다.

요즘 들어 여권에서 총선 후 민주당과의 재합당 또는 제휴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많이 나오는 것이 그 맥락이다.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란 盧대통령의 발언에 이어 대북 송금 관련자의 특별사면 방침이 나온 것은 이런 전략의 극치다. 열린우리당이 전당대회 이후 호남에서 지지율이 올라가는 시점에 맞춰 '펌프 효과'를 내려는 것이다. DJ정권 지지자들에게 열린우리당으로의 단일화 메시지를 거듭 전하는 셈이다.

한나라당도 대선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 같다.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안이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2002년 박근혜 의원이 탈당하고, 노무현 지지 바람이 거세지면서 위기감이 높아지자 이회창 총재는 마지못해 당 개혁 카드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노풍이 주저앉고 정몽준 의원까지 대선에 뛰어들자 '3자 필승론' 등에 안주하다 대선에서 패배했다. 李후보는 대선 마지막까지 승리의 착각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 모습은 어떤가. 대선 후 당이 총체적 위기를 맞자 전당대회에서 최병렬 대표체제를 출범시켜 바뀌는 모습을 보이는 듯싶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정체상태에 머물자 '신 3자 필승론'이 당내에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인적 교체와 건강한 보수로 탈바꿈할 필요성을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아무도 책임지고 손에 피를 묻히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보수는 정권의 부산물이었을 뿐 정체성 확립에 고민하고 투쟁한 적이 없었다는 역사적 한계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총선 결과는 예정돼 있다.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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