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처벌 규정없어 난감/「실명제 위반」 수사 고민하는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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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화사건과 달리 「위조죄」 적용도 어려워
장영자씨 대형금융사고를 수사중인 검찰이 또다시 실명제 위반사범 형사처벌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서울지검은 당초 장씨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24일 『실명제 위반혐의는 행정처벌 차원일뿐 수사대상으로 보기 어려우며 혐의가 드러난 금융기관 임직원은 김칠성 서울신탁은행 조사역외에는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명제를 위반한 금융기관 임직원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25일 검찰은 『장씨사건을 재검토하는 차원에서 실명제 위반여부도 일단 조사해보겠다』는 입장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반실명사범 수사착수여부를 놓고 검찰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긴급명령 위반과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수사가 별개차원이라는 법해석 때문이다.
검찰은 항도투금·동화투금 등 실명제 위반사건이나 한화그룹 변칙 실명전환사건을 수사하면서도 똑같은 고민을 해왔지만 장씨사건은 금융실명 전환기간중 이루어진 사건과는 달리 실명제 실시이후에 저질러졌기 때문에 더욱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장씨사건중 실명제 위반부분은 삼보신용금고가 예금 조성과정에서 장씨가 조성해온 1백33억여원을 실명확인하지 않았고,장씨의 예금 1억1천2백만원을 대화산업 관계자 5명의 이름으로 분산예치한 것.
또 동화은행도 장씨가 유치한 양도성예금증서 예금 1백40억원을 5명의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 입금시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경우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긴급명령 제3조에 규정된 금융기관의 실명확인 의무에 명백히 위반된다해도 이에 대한 처벌조항은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밖에 없다. 과태료는 일종의 행정처분으로 검찰이 기소해 법원이 판결하는 벌금과는 법적인 의미나 효과가 전혀 다르다.
따라서 형사처벌을 전제로 수사해야 하는 검찰로서는 지금까지 반실명사범에 적용해온 업무방해죄 또는 사문서위조죄 여부를 검토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실명전환기간인 8월12일부터 10월12일까지 5천만원 이상의 예금전환에 대해 ▲실명확인 ▲국세청 통보의무 등 업무를 방해한 동화투금·항도투금 등 신용금고사건과 최초 범행이 10월21일 이루어진 장씨 사건과는 사건 성격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게 검찰의 시각이다.
대검 중수부도 한화그룹 변칙실명전환 사건수사를 종결하면서 『금융실명제가 실명전환 기간이후의 차명거래를 금지한다고까지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따라서 검찰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수수료를 노린 사채업자들이 명의를 도용해 한화그룹 비자금사건에 적용했던 사문서위조죄.
그러나 장씨사건의 경우 금융기관이 단지 예금유치를 위해 차명거래를 방조한 정도라면 이 또한 적용하기 힘들다는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한화그룹 비자금 수사를 3개월 이상씩 끌면서 고민끝에 『국가시책을 정착시키기 위해 처벌이 불가피할 때 법조문을 합목적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궁색한 명분으로 처벌키로 결론을 내렸던 검찰이 이번에는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거리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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