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덕부총리 한승주 외무/통일관계장관 정책조율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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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모양내기 대화 않겠다” 강경발언/이 부총리/“파국까진 유머와 협상으로 대처”/한 외무
비교적 진보성향의 한완상 전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단명으로 물러나고 이영덕부총리가 바통을 이어받음에 따라 정부의 통일팀내의 조화문제가 큰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조만간 남북한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 등 남북대화가 재개될 전망인 가운데 통일관계 장관들,특히 이 부총리와 한승주 외무장관 사이에서 사뭇 다른 컬러가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정책의 사령탑인 이 부총리는 취임직후 북한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인권문제를 거론한데 이어 11일 서울 구기동 이북5도 청사 방문에서도 『우리가 바라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도 변해야 한다』면서 『더이상 모양내기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모일간지와의 대담에서 『남북한이 실질적으로 화해하고 통일로 나가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만남이 중요하다』면서 『북한 기분상하지 않는 말만 골라 하는 시대가 지나갔다고 한말도 이를 두고 한 것』이라고 했다. 남북대결 외교시대의 입장을 연장시켜주는 그의 이같은 발언은 자신의 성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해 「햇볕론」을 강조했던 전임자와는 판이한 정책을 펴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이 부총리가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표명하기보다는 단발성의 내뱉기식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어 남북한관계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핵문제의 핵으로 등장한 북한 핵문제를 사실상 요리하고 있는 한 장관은 대북 강경발언을 해 북한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항상 무게의 중점을 「대화」쪽에 두고 가능한한 북한을 자극하는 말은 삼가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 타임스지가 「한 장관과 북한 핵」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을 불구대천의 적으로 보기보다는 변덕스럽고,때로는 예측불가능하며,폭력적인,때로는 오랜 친척같은,그래서 임종직전까지 유머와 협상으로 대해야 하는 상대로 보는 자신감을 갖고 이다』고 묘사한 것은 이같은 성향을 잘 설명하는 것이다.
북한문제를 풀어나가는 기본인식인 대북한관에도 두 사람은 적잖은 차이가 있는 듯하다.
84년 남북한 수해물자 수수를 위한 실무접촉에서부터 85년 12월 남북 적십자회다 10차 본회의까지 적십자회담 수석대표를 역임한 이 부총리는 기본적으로 회담을 위한 회의가 열릴뿐 실질적 남북관계 개선이 없는 것은 북한의 책임이 많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 부총리는 공개적으로 말은 않지만 많은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북한 사람들을 믿을 수 없으며,북한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반면 한 장관은 『북한은 한편으로는 벼랑끝으로 가는 전술을 구사하면서도 전반적으로 합리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합리성을 훼손하는 요인으로 내부적으로 상하간의 의사소통,내부 견해차가 있는데 이것이 실제 협상때 협상조건·태도 등에 반영돼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같은 대북관은 북한을 이해하고 그 문제를 뛰어넘으려는 자세와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한 전 부총리의 그것과 크게 접근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지만 이 부총리 시각과는 큰 거리가 있다. 한 장관의 이같은 다소 진보적인(?) 시각이 그동안 크게 보이지 않은 것은 그동안 한 전 부총리의 목소리가 상당한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없는 이제 한 장관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언뜻 보아 통일관계 장관 가운데 그보다 더 진보적인 인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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