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환희와좌절>9.프로야구 MVP 김성래의 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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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32년의 내 인생에 있어서 93년은 최고의 해다.
최우수선수(MVP).홈런왕.골든글러브등 온갖 상을 도맡아 받은 한해였다.
올해 받은 상은 모두 15개나 돼 종전 것과 합하면 40개도넘어 진열장이 비좁을 지경이다.
그러나 수상의 기쁨보다도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에가슴이 뿌듯하다.
또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에는 지금까지 묵묵히 곁에서 격려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린 아내(金春蓮.30)의 공로가 컸다.
프로 입단이후 처음 받아 보는 MVP상을 받는 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나왔는지…,돌아가신 어머님이 그토록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84년 대학졸업후 실업팀인 한일은행으로 진로를 정했으나어머니 수술비 마련을 위해 프로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순간도 함께 떠올랐다.
또 간염에 시달렸던 순간들,타구에 맞아 앞니 여섯개가 몽땅 빠져 버린 일,그리고 무릎부상의 악몽등이 스쳐갔다.
왜 기쁜 순간에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악몽의 순간들이 꼬리를 물고 생각났을까.
돌이켜 보면 88년 왼쪽십자인대가 끊어진후 재기와 부상재발을거듭하다 수술로 일어서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내 자신은 아마 없었으리라.
많은 사람들은 당시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연봉 1억원의 타자가 됐을 것이라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그들의 격려도 고맙지만 난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수술과 함께 한 그후 4년간은 번민과 고통,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웃음을 잃었지만 그대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야구에 대한 열정을 얻었다.
팬들은 나에게 이제 선수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애정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단호히『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나는 야구에서 새 생명을 얻은 이제 막 뛰기 시작한 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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