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타결 가상 시나리오-쌀한가마 반값으로 대폭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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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농.축산물 시장개방 문제가 당장 발등의 뜨거운 불이 됐다.예보된 태풍의 위력과 피해를 주의보만으로 쉽게 짐작하기 어렵듯 그 파장이 어느 정도까지 미칠 지 언뜻 실감이 나지 않고,피부에 잘 와 닿지도 않던 문제였으나 이제 더 이상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UR협상이 타결돼 농.축산물 시장이 완전 개방될 경우 농촌사회와 농업구조는 물론 우리 사회전체가 대변화의 시련에 직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어떤 변화속에 중대시련을 겪게 될지 가상 문제점을 살펴 본다.
쌀 한가마에 5만~6만원,고추 6백g 한근에 2천~3천원.
가상소설속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GATT(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18조에 따라 수입제한(비교역 물품)을 해오던 쌀.쇠고기등 15개 주요 기초농산물 시장이 UR협상 타결로 개방될 경우 값이 모두 이처럼 폭락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
GATT 18조는 후진국의 생활수준 향상및 경제개발을 위해 예외적으로 특정국가의 수입제한을 인정해 주는 조항으로,제한품목대부분은 농.축산물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UR 협상 말고도 97년부터 이 조항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기로 돼 있어 어차피 농.축산물 시장의 개방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쌀이다.
국제곡물시장의 쌀값을 t당 4백달러선(15일 기준 미국 캘리포니아산 4백19달러,태국산 4백30달러)으로 계산할 경우 수송비등을 감안하더라도 국내 판매가격은 지금 쌀값의 절반이하로 뚝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현재 3만~3만3천 원씩인 20㎏들이 쌀 한 부대를 1만5천원선 이하로 사 먹을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얼핏 보기에 먹거리 값이 싸져 서민들의 가계 부담이 크게 줄어들고 생활이 그만큼 나아질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는 그 정반대라는 게 학계나 농업전문연구기관의 공통된 진단.
『맨 먼저 적자 영농을 피할 수 없는 산간지역이나 배수조건이좋지 않은 수렁논의 경작포기로 휴경지가 급증하겠지요.일부는 대체소득작물로 마늘.고추.배추같은 채소류나 양념류 또는 수박.참외등 과일류를 심는 논이 늘어 날 것은 뻔한 일 아닙니까.』 경남도 UR대책반 유통담당 연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河文植교수(41.경상대 무역학)의 진단.
『뒤이어 나타나는 현상은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폭락일 테고….결국 거듭된 실농으로 생활이 핍박해진 농민들의 대탈출이 시작되면서 도시 집중화.과밀현상이 가중돼 그 충격이 농촌지역 문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장을 미칠수밖에 없습니다.』 88년 양담배 수입개방이 시작되면서 담배 재배농들이 한꺼번에 고추로 전환하는 바람에 일어난 고추파동과 가격폭락이 그 한 예.
게다가 농업진흥청은『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농가당 경작면적을 현재의 평균 1.3㏊에서 최소한 20㏊ 이상으로 늘릴 경우최소한 2백만명 이상이 농업을 포기해야 되고 이 가운데 고령자1백85만명 정도는 실업군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업 연관 사업인 창고업이나 도정업등 농업부가가치 창출업소의감소현상도 불을 보듯 뻔해 유휴 노동인구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없게 된다.
농민들이 봇짐을 싸 대도시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중의 하나다.
그 근거는 간단하다.
국민들의 에너지 섭취량중 41%를 공급하고 있는 기초식품인 쌀은 농업소득의 44%,농가소득의 22%를 차지하고 있고,쌀농사를 짓는 농가 비율이 84%로 농작물 가운데 가장 많은 데다경지면적중 56%가 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벼농사를 주축으로 형성돼 온 농촌은 급격한 인구감소에따른 공동화 현상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집,텅빈 마을,잡초 우거진 들판만 남게 된다.
반면,도시에서는 인구집중으로 더욱 심각한 주택.교통.상수도.
공해.사회복지등 도시문제로 열병을 앓게 될 것이고 이의 해결을위한 비용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배운 기술이나 자본 없이 도시로 몰려든 농민들은 단순한 저임금 일용잡부나 날품팔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도시의 새로운 빈민이나 실업층을 형성하면서 또다른 달농네를 만들고 생존을 위한 각종 범죄 증가 또한 피할 수 없는현실이 될 것이다.
이농대열이 시작된 이후 70년 1천4백40만명이던 농촌 인구는 80년 1천만명 미만으로, 그리고 지난해에는 5백70만명으로 까지 격감해 총인구에 대한 비율이 70년의 44.7%에서 지난해에는 13.1%로 감소한 상태다.
비료.농약.농기계등 농업생산 자재산업의 위축 또는 붕괴도 불가피해 전반적으로 다른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할 것으로 전문 연구기관들은 분석하고 있다.
더욱이 값싼 외국산 농산물도 잠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국내 농산물 생산이 줄어 공급물량이 달리면 외국산 농산물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가격을 올리기 시작할 것이고,그렇게 되면 농산물 수입에 따른 엄청난 추가부담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쌀 수출국에서 수송.보관 과정에서 부패방지를 위해 살포하는 각종 농약으로 인한 국민건강 문제도 고민거리중의 하나다.
식량안보차원이나 이같은 여러 문제 외에도 홍수조절기능.대기정화.수자원함양 기능등 환경보전기능까지도 모조리 잃게 돼 유.무형의 손실이 그야말로 엄청날 것이라는 우려도 심각하게 제기되고있다.쌀농사는 경제적 가치 이상의 자연환경과 국 토보전의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연중 강우량의 60%가 7~9월에 집중되고 이중 다목적 댐 4개 정도에 해당하는 물이 논둑에 담기고 있으나 논농사를 포기하고 논둑 관리를 하지 않을 경우 이 물이 강과 하천으 로 그대로 흘러내려 홍수피해는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댐을 추가로 건설해야 하고 여기에 드는경비는 1조2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밖에 나머지 쇠고기.콩.보리.고추.감귤.참깨.마늘.양파.감자.고구마.옥수수.돼지고기.닭고기.유제품등 다른 14가지 기초농산물 역시 쌀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金永洙.許尙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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