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성과 쌀문제로 퇴색/김 대통령 연설 무슨뜻 담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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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회보고」에 의미… 국정 강력추진 기대무산/당정개편등 특유의 「위기돌파」에 나설수도
김영삼대통령의 29일 국회연설은 당초의 청와대쪽 의도와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변질됐다. 이번 방미성과를 자랑하고 국제적 「인정」까지 받은 지도자로서 한국 의원들을 「한수」 지도하면서 국민들에게 방미결과를 직접 호소하겠다는 것이 당초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터져나온 쌀시장 개방문제로 이러한 의미의 퇴색은 물론 오히려 쌀논쟁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김 대통령이 국회보고를 하겠다는 바람에 별로 내키지 않지만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야당은 쌀개방을 빌미로 일제 공세를 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국회보고라는 형식 자체와 내용에 큰 의미가 있다며 이해를 구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이번 방미가)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고,그동안의 활동과 성과를 보고드리는 것이 저의 도리』라고 했듯이 국회보고에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말에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는 아니며 특히 개혁서슬에 기죽어 있던 야당은 「쌀」이 지니는 명분과 공감대를 활용,실지회복을 꾀하려하고 있어 사태는 더욱 꼬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는 자성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측은 이같은 현실을 감안하여 연설문에서 「쌀」부분을 보완했지만 신통치가 않다. 클린턴 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금융시장 개방과 농산물 관세화에 대한 우리의 이견을 물었다. 김 대통령이 이에 대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조속한 타결에 노력할 것이지만 나라마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을뿐 그외에 어떤 합의도 없었다는 해명을 덧붙이는게 고작이었다. 일부에서는 『어차피 국가장래를 위해 불가피하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임전에 결단을 내려 줬더라면…』하는 아쉬움 섞인 원망도 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국회보고를 통해 이번 방미의 「성공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그 여세를 몰아 집권 2주년의 추진력으로 삼으려면 구상이 흐트러진데 대해 아주 낭패한 기색이다.
정계 일각에선 김 대통령이 돌출한 쌀문제로 시련을 맞게 된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취임후 처음 주춤하게 된 김 대통령이 잘못 판단하면 국내 정치는 물론 통상분야에서 의외의 파란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국제화·미래화를 선도해야 하는데 발목을 잡는 내부갈등만을 거듭하고 있고 국가경쟁력을 뒷받침하지도,따라가지도 못한다며 혹독한 질타를 가하고 있는 김 대통령의 의도는 예사롭지 않다. 당정개편 등 일련의 국정운영 스케줄도 달라질지 모른다는 전망이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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