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개방으로의 발상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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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마전에 끝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지도자회의는 綺羅星같은 각국 頂上들이 간편복 차림으로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亞-太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시키는 광경들이었다.
이 화려한 정상들의 만남에 대한 신문들의 落穗 한구석에 이런귀절이 있었다.「정상들 중에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나라는 韓.日.中 3개국이었다…」.정상회담의 주제를 발의하고 마무리도 지었다는 韓國은 그러면 어떻게 토론에 참여했다는 것인지…….
물론 이번 정상회담은 시급한 현안을 다루는 토론장소는 아니었다.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美國을 중심으로 결속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대립하고 있는 유럽에 우회적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린,미국의 주도 권을 부각시키기 위한 외교 페스티벌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정상들은 외무.통상장관들과 실무자들이 미리 협의해놓은화려한 修辭의 성명을 읽고 격의없는 대화의 제스처를 연출하는 것으로 족했다.
하지만 최근 열리고 있는 G-7정상회담이나 EC정상회담,또는다른 국제회의들을 보면 국가 지도자들이 이제 아래 실무자급에서협의가 끝난 문서를 낭독이나 하는 儀典的 역할만 하는 시절은 끝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모두 윗옷 벗어제치고 탁자에 둘러앉아 자기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토론하고 협상을 벌일 만큼 실무적이 되고 있다.
국제화의 시대는 그렇게 오고 있는 것이다.『영어 한마디 몰라도 외국여행 잘 하고 商談만 잘 하더라』고 넘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정치에서처럼 자기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회의장에 드러눕고,버티고,떼를 쓰는 극한 투쟁방식이 통하지 않게 되어있다.
그런 것은 민주화 투쟁이 정당했던 시기에나 용인받을 수 있었던이야기이지 더 이상은 곤란하다는 점을 APEC정 상회담은 시사해준 것이다.
이젠 국가의 지도자든,관료든,기업가든 해외에 나가 부닥치는 사람들 뿐 아니라 국내에서 택시를 몰든,구멍가게를 하는 사람들도 보다 국제화될 내일에 대비하는 준비와 훈련을 받아야 한다.
국민학교때부터 영어를 배우고,중국어.일본어.러시아 어등 주변국언어에 대한 早期훈련도 실시되어야 한다.싱가포르의 경우는 李光耀총리 시절 총리가 앞장서서 『정확한 영어를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그런 것들이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4龍중 선두로 선진의 문턱에까지 밀어올리는 실 천적 지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방이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상황을 현실 그대로 수용하는 사고의 전환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만 살자는 식의 제로섬 민족주의는 시대의 퇴행물이 되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개방이 거스를 수 없는 大勢라면 그 속에서 살 길을 찾아내는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신념을 불어넣는 정책적 대응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
개방의 가장 큰 논난거리중 하나인 쌀문제를 보자.
식량 안보라는 오랜 통념 때문에,그리고 가뜩이나 피폐한 농어촌의 현실 때문에 쌀개방문제를 잘못 끄집어냈다간 몰매를 맞게 되어있다.정치인들은 아무도 그런 위험 부담을 지려 하지 않는 다.그러나 이웃 日本에서는 오자와(小澤一郎)등 유력 정치인들이정치적 타격을 감수하고 쌀수입이 종국에는 불가피할 것임을 용기있게 역설해왔다.그렇게 면역을 기른 덕분인지 이제 일본 국민 60%가 쌀시장을 개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경우도 한쪽에서는 농민들의 데모가 벌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10억프랑의 농촌지원금을 몇년째 계속 내보내면서 농촌의 구조개선등 대응책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에 대비한다는 농어촌 구조조정에 관한 법들이수년래 국회에서 퇴짜를 맞아왔다.역대 정권은 자기 임기중에 욕먹기 싫어 쌀시장 개방 不可만을 외치다 다음 정권에 떠넘겨버리곤 했다.국회의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이미 일본마저 개방으로 돌아설 기미를 보인 판에 우리가 맨 마지막 개방국이 되면 정치인에겐 변명거리가 생기겠지만 그 피해는 농민들에게만 돌아갈뿐이다.남들은 만일의 경우를 준비하는데 우리 정치인들이 준비한것이라곤 립 서비스 뿐이다.개방 시대의 무책임 정치의 표본이다. ***쌀市場 개방대책 시급 멕시코의 성공은 미국 자본의 횡포와 민족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인기위주의 大衆경제정책 사이에서浮沈하던 南美의 고질적 폐쇄체제를 건전한 개방체제로 전환한 살리나스 대통령의 선택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개방의 거센 물결에 대비하는 것은 고립과 폐쇄로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도전과 실천적 준비로 극복하는 길 뿐이다.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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