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창열씨 회고전-물방울 하나로 서구화단 우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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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물방울 하나로 서구화단의 두터운 담장을 녹아내리게 한 서양화가 金昌烈씨(64)의 대규모 회고전이 27~12월21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려 영롱한 물방울에 담긴 20년의 세월을 한눈에보여준다.73년 파리 크놀 앵테르 나쇼날에서 열 린 전시회에서처음으로 화면에 물방울을 실어냄으로써 파문을 일으켰던 金씨는 이후 우리나라는 물론 프랑스.독일.스위스등 전세계를 무대로 58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화면 위에 금방 굴러내릴듯한 물방울이 너무도 선명해 사실인지아닌지 손으로 만져 확인해 보고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표출해내고 있는 그의 작업은 한때 눈부시게아름다운 것들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것임을 일깨워 준다.
서울대미대를 졸업하고 57년부터 작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그는 초기에는 화면에 무엇을 접착하거나 절단하는 작업을 통해 흔들거리는 움직임을 드러낸 작업들을 보여주었으나 이것이 화면에서예리한 틈사이를 비집고 나타난 채색된 선들로 변 화되다가 차츰선이 둥근 형태로 바뀌어져 마침내 물방울에 이르게 된 것.
어느날 우연히 햇빛 속에서 반짝이는 물방울을 보고 단숨에 매료돼버린 그는 그때까지의 작업이던 예리한 틈새로 흘러내리던 불투명한 액체를 뒤로 하고 73년 극사실 기법으로 화면속의 물방울을 그려내는데 성공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지니는 물방울로 환생시켰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生麻의 캔버스 위에,피가로紙 위에,낙엽위에,千字文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물방울들은 최근에는 우리글 위에까지 내려앉았다.
이번 전시에는 8m에 이르는 대작을 포함,「물방울」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60여점의 유화와 판화,드로잉등이 전시된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설치작업들.물방울 모양의 유리안에 물을 담은후 모래가 깔린 돌상자에집어넣은 이 설치작업은 그의 영원한 소재인 물방울의 변주가 미래에서도 다양하게 계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12월1~15일 현대화랑에서는 그의 근작전이 열려 현재의 작업을 심도있게 보여줄 예정이다.
〈洪垠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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