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혁대치 결국 피를 불렀다/총성속 모스크바… 옐친의 행보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군동향·시민반응 아직 미지수/의회측 “민중혁명의 시작”선동/옐친 시간끌면 불리… 속전속결 노릴듯
러시아 최고회의(의회)측과 옐친측이 무력을 동원한 정면충돌을 벌임으로써 이제 러시아의 정국위기는 결국 평화적 해결의 길을 찾지 못하고 「무력에 의한 해결」의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 91년 8월 쿠데타이후 처음으로 탱크와 완전무장한 군이 모스크바에 투입됐고 1917년 볼셰비키혁명후 처음으로 모스크바 시민들이 총을 들고 최고회의와 헌법이냐,아니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냐를 놓고 서로에 대한 총질을 벌이는 비극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최고회의 해산을 명령한 이후 발생한 러시아 헌정위기가 드디어 대립되는 정치세력 끼리의 유혈무력충돌,전투 상황으로 변해 내전이라는 최악의 상황마저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3일 오후 4시쯤 최고회의와 직선거리로 약 2백m정도 떨어진 모스크바 시청을 점령한 최고회의측 시위대와 병력은 『이것은 민중혁명의 시작』이라는 알베르트 마카쇼프 전 볼가 우랄 군구 사령관의 선언에 환호하며 「크렘린」 「오스탄키노」 등을 외치며 오스탄키노 방송국 등을 점령하기 위한 무장병력과 함께 트럭 등에 분승,목표물을 향해 출발했다.
최고회의건물 뒤편 승리 광장에서 만난 세르게이는 『이제 우리나라가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일단의 시위대는 계속 최고회의가 옐친을 탄핵하고 대신 선출한 대통령 「루츠코이」와 「소베츠키사유즈」(소련) 「파시즘을 몰아내자」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역사학자라고 주장하는 한 중년의 남자는 『러시아 역사에서 겨울의 길목에 발생한 피는 항상 집권층이 아닌 민중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며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과 1917년의 10월혁명을 열거하며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의 상황이 1917년이나 1905년의 상황처럼 장기간 계속되고 그만큼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킬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3일밤 늦게까자 상황을 분석하고 모스크바주재 서방외교관들과 외신기자들은 3일 밤부터 4일까지의 상황전개에 따라 사태가 장기화되고 확대될 것인지,아니면 엘친측의 단호한 진압에 의해 상황이 종료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을 하고 있다.
3일 밤 12시40분 현재(한국시간 4일 오전 6시) 내무부산하 군의 일부가 최고회의측을 지지하고 있다는 미확인 보도 이외에 최고회의측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부대가 아직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고 시민전쟁을 결정지을 일반시민들의 참여여부도 날이 밝아야 판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옐친측으로서는 이번 사태를 오래 끌 경우 점점 더 상황이 불리해지고 피해자 증가에 의한 시민들의 불안과 과격파에 의한 선동,혹시 있을지도 모를 일부 민족주의 경향 군부대의 동요 등을 우려해 단기간에 친위부대를 동원,최고회의 등을 장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모스크바의 소식통들에 의하면 옐친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대테러전담부대인 알파부대와 구국가보안위원회(KGB) 산하 최정예부대중 하나인 27군·공수부대·일부 탱크부대 등을 모스크바에 소집,크렘린과 외곽경비를 전담케하고 있으며 보안군·내무군·내무부산하 특수부대인 오몬(OMON) 등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옐친은 또 내무·보안·국방장관에게 모스크바의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하라고 명령,강경 진압을 사실상 승인했다.
옐친이 이처럼 강경 진압을 실행하는 경우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엄청난 부담을 지게될 것이 분명하지만 현재로선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고회의 해산명령을 통해 일시에 대항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자신의 의도대로 정치일정을 끌고가려 했던 기도가 지방의 반발,최고회의의 강경한 저항 등으로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무력충돌에 의한 전투상황까지 발생해 여기서 밀릴 경우 그의 정치생명의 종식은 물론 친서방 민주세력의 몰락을 불러올 것이 확실하다.
소식통들에 의하면 현재 최고회의측은 지지세력에 고무돼 옐친측과의 타협을 통한 해결을 하지 않고 시민들의 지지를 통한 옐친정부 전복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모스크바의 상황이 앞으로 더 많은 피를 흘리고 나서야 해결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