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최악 경제난속/구동독 주민은 윤택(통독 3주년: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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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통일후유증 효과적 대처/「인프라」투자로 체질강화
통일 3주년을 맞는 독일의 경제사정은 전후 최악의 수준으로 일컬어질 만큼 어렵다.
올 상반기중 독일의 국내 총생산은 지난해에 비해 2% 감소했다. 통일 당시이던 지난 90년 4.9%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독일경제는 이후 내리막길을 달려 지난해 4·4분기부터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기 시작했고,올해엔 마이너스 3%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8월말 현재 독일 전체의 실업자수는 3백50만명 정도로 이중 구서독이 2백30만명(실업률 7.5%),구동독이 1백20만여명(15.4%)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조업단축노동자·재취업교육자 등 실질적인 실업자 2백만명을 합하면 전체 실업자수는 5백50만여명에 달한다.
물가는 선진공업국중 비교적 높은 수준인 4%를 넘고있다.
또한 89년 1천80억마르크의 무역수지 흑자가 올해엔 7백억마르크의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어느 한 분야 반반한 곳이 없다. 이러한 독일의 경제난은 통일이 야기한,이른바 통일후유증이라는 것이 그간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물론 이러한 경제난이 통일에서 기인하는 면도 없지는 않지만 주된 원인은 세계적인 경기침체 때문이다.』 바젤 경기예측연구소 한스 바르트연구원의 진단이다.
물론 구 동독을 구 서독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막대한 투자가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통일후 그간 91년 1천4백억마르크,92년 1천5백20억마르크,93년 1천8백30억마르크를 동쪽에 지원한 독일정부는 앞으로 얼마나 더 쏟아 부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대동독투자가 독일 경제난의 본질은 아니다. 그보다는 불가피한 산업구조 조정이 세계적인 불황과 맞물려 수출위주의 독일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이다. 독일은 「최고의 임금(시간당 42마르크·미국 24마르크)에 최단 노동시간(주 37시간),최장 유급휴가(연 40일)」가 보장되는 나라다. 지금까지는 기술로 이것이 가능했지만 이젠 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통일과는 아무 상관없는 메르세데스 벤츠사가 내년에 1만4천명을 감원키로 하는 등 모든 기업이 경영합리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독일정부도 최근 기업에 대한 조세 감면·행정절차 간소화 등을 골자로 하는 제도개편을 단행,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독일이 막대한 통일비용과 통일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경제력이 독일에 훨씬 뒤지는 한국은 독일식 통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은 독일경제의 이같은 실상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독일 경제가 곧 쓰러질듯 얘기들 하지만 사실은 유럽에서 그중 탄탄하다는 프랑스보다 물가만 빼놓고는 모두 양호하다는 객관적 사실에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남들이 다 어려울때 구동독에 막대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경영합리화 등 체질을 강화하고 있는 독일은 오히려 매우 효과적으로 통일후유증을 극복하고 있는 셈이다.
『구동독주민들의 생활수준은 통일전과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됐다. 실업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실업수당으로 전보다 훨씬 잘 산다. 단지 세계최고 수준인 서독사람보다 못사는 것이 불만일 뿐이다.』
동베를린 길거리에서 만난 한 구동독 주민의 이같은 실토는 그간 익히들어온 구동독 주민들의 상투적 불만과는 거리가 있지만 사실에 가깝다는 생각이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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