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현지를가다>1.평화의 기대 넘치는 예루살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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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걸프戰 당시인 지난 91년 1월에 이어 5일 2년반여만에 다시 찾은 예루살렘은 겉보기에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으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표정은 그때와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방독면을 휴대하고 거의 매일 이라크가 쏘아대는 스커드미사일에 극도의 긴장감과 노이로제증세를 보이던 이스라엘인들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웠다.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수 없었던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실제로 2년전쯤 이스라엘 기자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을 만난 죄로 징역을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정부고위관리가 그들과 직접 협상하는 것은 물론 서 로 승인까지할 단계에 왔으니까요.』 텔아비브市 벤 구리온공항에서 예루살렘까지 태워다 준 다비드라는 이 택시운전사는 어느 나라나 그렇듯民意를 가장 솔직하게 대변하고 있었다.유대인인 그는 정부가 현재 PLO와 벌이는 평화협상을 지지한다면서『현재의 변화가 우리에겐 蘇聯 붕괴나 獨逸통일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나름대로의미부여까지 했다.
그러나 현지인들 모두가 평화무드에 젖어 있지는 않아 보였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찾은 東예루살렘 舊시가지에서는 살기어린반응들이 여전했다.이곳은 가자지구-예리코가 속해 있는 요르단江西岸.골란고원 등과 함께 지난67년 6일전쟁 때부터 이스라엘이점령해 오고 있는 지역으로 팔레스타인人들의 집단거주지.
『이스라엘인들과 평화는 없다.이까짓 가자-예리코 자치안을 위해 그동안 우리가 1백년동안 피를 흘려온게 아니다.배신자 아라파트는 곧 물러날 것이다.』 舊시가지 성벽의 야포門을 지나 다비드街 초입에서 선물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팔레스타인人 하산 사딕(32)은 이스라엘人들을 모두 지중해로 몰아넣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팔레스타인 강경파인 하마스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기다 렸다는듯 그렇다고 말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해 서둘러 다비드街를 따라 통곡의 벽쪽으로 향했다.금방 길옆에서 누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으시시한골목길에서 검은 모자에 정장차림을 한 유대인 둘을 만났다.
『하나를 주면 열을 줘야 합니다.오늘 예리코와 가자를 그들에게 양보하면 내일은 예루살렘을 줘야 합니다.이는 종말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말한 그들은 결혼식 피로연에 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통곡의 벽 입구에서 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한채 경계를 서고 있는 한 이스라엘 병사는 이들과 달랐다.
그는 현재의 협상을 전폭 지지한다며『아라파트는 지성을 갖춘 감각있는 정치인으로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의외의 평가를 내렸다.늘 긴장속에 근무해야 하는 병사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평화에 대한 갈증이 짙게 배어 나오는 듯했다.
통곡의 벽에서 기도에 매달리던 한 유대인은 또다른 반응을 보였다.그는『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단지 저 위의 전능하신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하느님께서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도와주실 겁니다』라면서 총총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 팔레스타인人이 운전하는 택시를 탔다.그 역시『평화협상이 잘 되건 잘 안되건 나와는 상관 없다.
나와 내가족들이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며 정치엔 전혀 흥미없다고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을 바라보는 당사자들의 시각은찬성과 반대,그리고 관심과 무관심이 뒤섞여 있다.그러나 기자는2년전에 비해 이곳 사람들이 앞날에 대한 우려보다 기대를 더 많이 하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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