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安風'] 돈 출처 논란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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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96년 김영삼(YS)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여당 사무총장들에게 줬다는 '안풍(安風)자금'은 안기부(국정원의 전 이름) 돈인가, 대선 잔금인가, 통치 비자금인가 아니면 섞인 것인가. 검찰과 1심 재판부, 구속된 김기섭 안기부 전 운영차장 등은 안기부 자금이라고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주장이 거세게 일고 있다.

우선 안기부 돈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유력한 논거로 안기부 예산 구조를 든다. 유용자금이 '1천2백억원'이라는데 일반 예산의 5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이런 거액을 유용할 수는 없고, 예산 불용액과 예산 이자를 유용했다 해도 이는 원래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동북아포럼 세미나 관계로 하와이에 머무르고 있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13일 전화 통화에서 "어떤 전직 국정원장은 김기섭씨가 안기부 예산 이곳저곳에서 그런 거액을 빼돌렸다고 주장하는데 내가 볼 때 안기부 예산 구조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국정원장으로 취임했을 때 대통령의 여러 행사 비용으로 사용되는 안기부의 '통치 정보비' 1백억원을 김대중 대통령이 사용하지 않겠다고 해 당시 문희상 안기부 기조실장이 이를 국고에 반납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적이 있다"며 "국정원 회계도 나름대로 엄격한데 김영삼 대통령 때 아무리 안기부 운영이 방만했다 해도 1천2백억원을 유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1심에서 김기섭씨의 변론을 맡았던 홍준표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국정원 예산관이 '계좌 1천여개를 두번이나 뒤졌지만 예산이 빠져나간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92년 김현철씨가 대선 사조직 나사본에 있던 대선 잔금 1백30억원 중 70억원을 외환은행 퇴계로지점의 안기부 차명계좌에서 세탁한 것은 재판부도 인정했다"며 "이는 돈이 안기부 계좌를 통해 세탁된 외부 자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YS 본인도 3년 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대선 잔금 가능성'을 시사한 적이 있다. 후보였던 자신이 관리한 대선 잔금은 아니지만 민자당이 보관한 '당의 대선 잔금'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92년 대선 후 당에 남은 돈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 뒤 "강삼재 의원이 받았다고 (검찰이 주장)하는데 姜의원이 얼마나 깐깐한 사람인가. 누가 안기부 돈이라고 갖다 주려고 했어도 그 사람 절대 안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등 여권 고위 관계자들은 안기부 자금과 YS의 대선 잔금이 섞였다고 설명했다. 3분의 2 정도가 안기부 자금이고 3분의 1 정도가 대선 잔금이란 얘기다. 당시 수사 기록에도 나와 있다는 설명이다.

김진 정치전문기자.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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