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과 진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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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물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표면에 나타나는 그대로 보는 것은 가장 순수하고 객관적인 관찰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떤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바른 마음씨,비뚤어지지 않은 성정이라고 찬양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때로는 피상적인 관찰,어리석은 자세라고 핀잔받아 마땅할 때도 많다. 세태가 평탄치 못하고 인심이나 사나운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예컨대 소란스러운 여울물과 잔잔한 강물의 경우를 보자. 경사진 바위와 자갈 사이를 흐르는 여울물을 사람들은 일단 무서워하지만 그 수심은 얕은 것이다. 잔잔한 강물은 겉으론 평온하지만 잘못 건너다간 목숨까지 잃게 된다. 늑대가 나왔다고 외친 양치소년의 거짓말을 끝까지 거짓말로 치부해버린 마을사람들이 결국 참변을 당하게된 것도 같은 이치다. 사람의 심정과 사물을 보는 시각이 본래 아무리 순수하고 정직하다 해도 사물의 본질과 현상의 내막이 다르다는 것을 몇번쯤 체험해본 사람은 자신의 정직과 순수에 자신을 잃게 되는 것이다.
라이프주택의 경영진을 전격 교체한 주거래은행측은 이 업체가 은행빚이 증가일로에 있고 지금의 경영진으로는 정상화가 힘들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이런 조치에 외부압력이나 정치적 배경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다. 이 회사의 자금흐름이 좋지 않아 흑자부도를 내느냐,은행이 경영권을 장악하느냐를 검토하다가 후자를 택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중에 나도는 소문은 다르다. 라이프그룹이 이른바 월계수회에 밀착돼 있었고,비자금을 만들어 모모한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대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금융실명제 실시와 더불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다는 뜻은 물론 「괘씸죄」의 요인도 없지 않다는 분석들이다. 이 회사 경영진의 수첩에 적혀있는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계좌이름을 노조위원장이 밝힌 것도 소문을 믿게하는 근거가 되고있다. 이 사건이 몰고올 정치권에의 파장에 국민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민이 각종 소문과 추측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숙덕거리느라 일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경젱국들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 발표를 그대로 믿는 풍토는 언제나 정착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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