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명의땐 증여세 안물듯(「차명계좌의 실명전환」궁금증 풀이: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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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성년자녀 천5백만원까지 무관/「상속의도로 자녀명의 위장전환」은 정밀추적/「친인척이름 실명화」는 종합과세땐 문제 소지
가족이나 친지의 이름을 빌린 차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할때 문제가 되는 세금은 증여세다.
이자소득세야 5년간 얻은 이자에 가명예금의 세율을 곱해 추징하면 그만이지만 예금의 증여를 따지는 과정은 무척 복잡하기 때문이다. 상속세는 상속하는 사람이 사망하고 상속이 이뤄진 다음 성립하기 때문에 차명계좌의 실명전환때는 문제 밖이다.
부동산의 경우 내 돈으로 사서 가족이나 친인척의 명의로 한 사실이 드러나면 거의 1백% 증여세 추징대상이 되나 예금을 가족·친지의 명의로 들었을 경우는 양상이 하도 다양해 국세청에서 조차 「구체적인 사실에 따라」 증여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즉,실제 사안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안별 과세 판단
국세청에서는 그동안 부동산 증여에 관한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어 과세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으나 이처럼 미묘한 예금 증여문제는 다뤄본 경험이 적어 앞으로 상당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자인하고 있다.
예금의 증여를 따지기란 그만큼 어려운 것이지만 대원칙은 있다. 민법 5백54조에 따르면 증여는 주는 사람이 증여할 의사를 갖고 있고 받는 사람도 받을 의사가 있어야만 성립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어느 한쪽만 의사를 갖고 있을때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번 전제를 깔고 우선 주변에 흔히 있는 가족 이름의 차명예금을 살펴보자.
집안의 재산관리를 담당해온 40대 가정주부가 남편이 번돈을 수년간 자기 명의의 계좌에 꾸준히 저축,1억원을 모았다 치자. 일단 아내 명의를 남편명의로 실명전환 한다면 이자 소득세를 추징당하고 5천만원 초과 실명전환이어서 국세청에 통보된다. 이에따라 증여여부를 따질지도 모르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증여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달리 아내가 자신의 실명으로 직접 확인하는 경우를 보자. 당장 이자소득세 추징을 당하지 않겠지만 훗날 어떤 계기로 자금출처 조사를 받게 된다면 돈의 출처는 남편의 소득임이 바로 드러날 것이다. 겉보기에는 증여세 대상이 될것 같지만 증여세를 매기려면 남편이 아내에게 돈을 줄 뜻이 있었는지,그리고 아내가 남편의 돈을 받을 뜻이 있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이런 사안이라면 대개 아내가 재산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지 돈을 받아 자신만의 재산으로 삼을 의도는 없다고 보는게 정상이다.
국세청의 관계자는 『부부 사이의 재산구분이 거의 없는 한국적 상황을 고려할때 배우자의 이름을 빌린 차명예금은 대체로 증여세 과세에서 면제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의사 있어야 성립
현행 증여세율은 15%(1천만원 이하 증여)에서 최고 60%(5억원 초과 증여)에 이른다. 배우자에 대한 증여는 직계존비속 공제 1천5백만원에 결혼한지 1년이 지났을 때마다 1백만원 추가 공제 받는다. 예컨대 결혼한지 20년된 부부라면 3천5백만원까지는 배우자에게 줘도 증여세를 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 이후부터는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세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엄밀하게 말해 직장이 없는 주부의 계좌에 많은 돈이 있으면 배우자로부터의 증여여부가 시비될수도 있다. 선진국에서는 가사노동의 값을 매겨 증여가 있더라도 그 금액만큼은 세금을 면제해준다. 우리나라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고 있으나 세법에서는 인정하지 않고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이제 어떤 형태로든 세법에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학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 다음은 미성년 자녀이름의 예금에 부모가 돈을 부어주는 경우다. 이때 1천5백만원까지는 증여로 보지 않는다. 이 역시 부모 이름으로 실명전환 한다면 이자소득세 추징외 특별히 문제될게 없다.
○가사노동값 논란
반대로 1천5백만원이 넘는 자녀명의의 계좌를 자녀가 직접 실명확인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세청에 통보되지 않아 당장 증여시비가 일 확률도 적다. 그러나 세무당국에서는 자녀에 대한 예금증여가 많을 것으로 보고 철저한 관리방안을 세울 방침이어서 훗날 포착될 가능성이 높다.
친인척 명의의 차명예금은 어떻게 될까. 친인척이 성인이라면 실명전환을 하지않고 그 친인척이 실명으로 확인해도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일단 드러나면 친인척 공제 5백만원을 뺀 나머지 액수에 대해 철저히 증여세를 물리게 된다. 친인척의 경우는 재산을 공유하는 일가족처럼 「특수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증여증거로 남아
이번에는 긴급명령을 악용할 생각을 해보자. 아버지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한 자식 명의의 계좌를 자신명의로 위장 전환한다고 하자. 이때 금액이 통보 기준을 밑돌때는 문제없으나 기준을 넘는 금액을 전환하면 영락없이 걸려든다. 국세청은 이런 사례가 통보되어 오면 예외없이 정밀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자식이 직업을 갖고 있어 자금출저를 댈수 있으면 괜찮다.
원래 상속세법에는 1천만원이상 증여가 이루어지면 증여세를 물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긴급명령에 따르면 실명전환계좌에 대해 ▲미성년자는 1천5백만원까지 ▲20∼30세 미만은 3천만원까지 ▲30세 이상은 5천만원까지 증여여부를 묻지 않게 된다.
그 금액을 넘어선 가족·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도 특별한 「증여의도」가 담겨있지 않는 한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실명확인을 해 이자소득세 추징을 피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이렇게 실명확인된 계좌는 계속 남게되며 증여의 증거가 될수 있다는 점이다. 상속·증여세의 조세시효는 최장 10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소득이 파악되는 96년의 종합과세 시행이후에 새삼 이름을 빌려준 사람의 실명확인 때문에 증여 시비가 일수도 있는 것이다.<이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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