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밝힌 실명제 종합대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검은돈」 빠져나갈 구멍 “원천봉쇄”/부동산·미술품·귀금속 등 거래 정밀추적/해외유출 막게 8월이후 송금 매주점검/인력·전산망 한계… 선별조사로 선회불가피
국세청이 17일 발표한 「금융실명제 종합세무대책」은 실명제 실시로 대다수의 「선량한 금융거래자」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범위에서 「검은 돈」이 발붙일 곳을 뿌리뽑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12일 금융실명제에 관한 긴급명령이 발동되면서 모든 부동산거래와 계좌당 3천만원 초과 인출,5천만원초과 실명전환,금융기관 점포별 월거래금액 5천만원 초과의 경우는 예외없이 국세청에 통보하도록 규정해 많은 국민들이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렸던게 사실이다.
○불안심리 해소
금융당국과 금융기관·언론사 등에는 자신의 경우가 세무조사를 받는지 여부를 묻는 예금자들의 문의가 폭주했으며 「검은 돈」과는 관계없는 사람도 실명확인을 미루기 일쑤였다.
「국세청 통보=세무조사」로 오인한 사람들 사이에 「세무조사 기피 신드롬」이 퍼졌고 그 결과 금융거래가 막히는 등 정상적인 경제활동마저 위축되는 상황이 조성됐다.
국세청의 이번 대책은 먼저 이같은 불안심리를 감안,실명제관련 세무조사가 어디까지나 투기조사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봉급생활자,소규모 영세업자,생산적 중소기업,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사업자들은 세무조사 공포에서 벗어나도 될 전망이다. 국세청이 밝힌 자금출처 조사대상은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투기나 탈세여부에 의해 가름되기 때문이다.
또 규정대로 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조사수요를 국세청의 현재 인력·전산망 등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같은 선별조사는 사실상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과세사각」 없애
금융계에 따르면 3월말 현재 가명계좌는 은행권이 1백7만여개,증권은 2만6천여개 등 금융권 전체가 1백10만개가 훨씬 웃돌고 차명계좌도 전체의 10% 수준인 1천만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계좌를 중심으로 밀려드는 자금출처조사 통보를 당장 소화할 만큼 여유가 있지 않다. 올상반기중 하루 평균 2천4백여건의 부동산거래가 이루어졌는데 4백80여명 부동산투기 조사반원으로 두달간 거래를 조사한다는 것은 무리다. 국세청 재산세국이 지난 4∼7월중 대대적으로 벌인 부동산 투기 특별세무조사도 겨우 2백17명만을 대상으로 했을 뿐이다.
국세청 전산망은 1천3백만명의 재산상황(금융자산 제외)을 담고 있지만 이미 포화상태다. 부동산 거래 한건이 전산에 입력되려면 6개월이상 걸리는 현재의 처리상태에서는 앞으로 발생하는 이자소득 자료와 부동산 거래자료가 생각처럼 쉽게 전산화될수가 없어 완벽한 과세포착이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국세청의 입장에서는 보통사람의 금융거래에 대한 조사는 크게 완화하고 자금이 투기로 흘러갈 길목을 원천봉쇄하자는 방향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금융거래자중 통보된 사람은 해당자의 신변상황과 사업상황을 분석하고 증여·투기혐의가 있는 극소수에 대해서만 자금출처를 묻고 출처가 불확실할 경우에만 정밀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부동산거래자도 증여·투기혐의가 있는 경우만 전산자료에 입력되어 있는 해당자의 소득·부동산 거래상황을 확인,중점 조사대상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이와 반대로 제도금융권에서 막힌 자금이 흘러갈 만한 곳은 입체적으로 봉쇄하겠다는 계획이다. 봉쇄작업은 ▲부동산 ▲서화·골동품 ▲보석·귀금속 ▲자금해외유출 등 네가지 분야에서 이루어진다.
1천명의 투기대책반을 운용,부동산 가격동향을 감시해 투기우려가 있는 곳은 곧바로 투기우려지역·지정지역·지가급등지역 등으로 지정토록 했으며 2백50명 투기혐의자에 대해 5년간의 모든 탈루세금을 추징하는 세무조사도 실시키로 했다.
보석·귀금속업소에 대한 표본조사에도 나서 번화가 빌딩안에서 점조직 형태로 거래하는 「숨은 사업자」 색출을 하기로 했으며 이미 16일 전국 주요귀금속 상가를 대상으로 가격 및 유통실태 파악을 위한 입지조사를 진행중이다.
그동안 과세 사각지대였던 미술품·골동품 업계는 더욱 된서리를 맞을 것 같다. 국세청은 화랑협회·고미술협회와 유명화랑·표구점·전시회를 돌며 거래동향을 분석하고 투기혐의가 있는 사람은 특별세무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미술가협회로부터는 회원명단을 받아 중견화가들의 소득을 면밀히 추적하게 된다.
○변칙상속 차단
자금해외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1회 3천달러 이상,연간 1만달러 이상 송금실적과 8월이후 해외부동산 취득허가 및 승인사항을 매주 체크하고 유출협의가 있을때는 세무조사에 나선다. 또 법인세 조사 등 각종 세무조사때 기업이 국제거래를 이용해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를 정밀분석할 방침이다.
국세청은 이같은 종합대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이 날짜로 국세청안에 임채주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금융거래 대책위원회」와 「분야별 실무대책반」을 설치했다.
이건춘 국세청 재산세국장은 『투기를 하지 않는 일반국민들은 안심해도 되며 세무조사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평소보다 한결 강도높은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추경석 국세청장은 하반기에는 생산적인 제조업체에 대한 세무간섭을 최대한 줄이되 공평과세를 위해 변칙상속·증여 등을 일삼는 음성·불로·탈루소득자에 대한 조사를 더욱 강화하고 기업주가 기업자금을 사유화하는 문제기업,무자료거래를 많이하는 업종 등에 대한 세원개발을 철저히 해 부족한 세수를 메우자고 강조했다.<이재훈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