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기장|이륙서 착륙까지 승객안전 "파수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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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창공이 캔버스라면 그 캔버스 위를 나는 비행기는 붓이다.」
조종사들은 비행을 하나의「예술」로 생각하고 있다. 목적지까지 항로를 따라 변화무쌍한 기상이나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을 뚫고 무사히 도착하는 과정을 푸른「캔버스」위에 그리는 한 폭의 그림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계기가 전자화·자동화·디지틀 화 돼 있어 첨단과학의 총체라 불리는 B747등 최신 기종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작동하며『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실현시키고 있다는데 그들은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권한과 책임=66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아시아나 항공 추락사고를 본 조종사들은 한결같이『착잡할 뿐이다』『할말이 없다』는 말로 기장의 책임임을 지적하고 있다. 사고에 대해 원가할 말들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은 말을 하려 들지 않는다. 이번 사고가 조종사들에게는 절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자신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악천후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조종사의 과실이 이번 사고 원인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잠정결론이 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승무원 지휘감독>
책임이 큰 만큼 권한은 절대적이다. 기종과 운항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점보기의 경우 조종석에는 기장·부기장·항공기관사 등 3명이 한 조를 이룬다. 기장은 항공기의 전 승무원을 지휘감독하고 항공기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승객에 대해서는 감금·하기 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한 사항에 대해 명령권도 행사할 수 있다. 항공기 안전에 관해서는 경찰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아시아나 항공 추락사고 원인이「조종사의 무리한 착륙시도」로 모아지면서 그렇다면 항공기 이·착륙을 유도하는 관제 사와 자사의 운항관리 사는 어째서 강력하게 회항을 권유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일면서 이들의 직무대만에 대해서도 관심을 모았었다 .
그러나 조종사들은 결론 적으로『회항하느냐, 조건이 좋지 않더라도 착륙을 감행하느냐의 결정은 전적으로 기장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운항=기장은 운항 중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관제소·컴퍼니 라디오(자사 운항관리실)와 끊임없이 교신한다. 현재의 위치·고도·운항속도·외 기온도·연료상태·목적지 기상상태를 계속 보고하고 관제소와 컴퍼니라디오로부터 운항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기장은 관제소 등으로부터 제공받은 목적지 기상상태 정보와 항공기상태를 감안해 회항이냐, 착륙이냐를 결정한다.
착륙지점의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에도 관제 사는『회항하겠느냐, 어쩌겠느냐』며 기장의 의사를 불어 볼 수 있을 뿐이다. 운항관리사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기장이 착륙하겠다면 말릴 수 없다는 것이다.
기장들은 이번 아시아나 항공 사고 기 기장이 어째서 무리한 착륙을 시도했겠느냐는 데 대해 회항했을 경우 차량제공·환불 등 회사에 번거로움을 줄 뿐 아니라 보이지 않게 눈치가 보인다는 것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승객들의 항공기에 대한 이해부족도 들고 있다.

<3년 되어야 자격>
외국의 경우 항공기가 기상 등의 문제로 결항·지연·회항 등을 했을 경우 그 책임이 전적으로 회사의 잘못에 있지 않을 때는 회사의 조치에 승복하지만 우리의 경우 걸핏하면 농성을 벌이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조종사들에겐 이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출신성분 및 자격=항공기 사고의 특성은 대형참사다, 한번 나면 생존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크다.
승객들의 생사를 책임지고 있는 기장은 이 때문에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항공사의 현역기장은 1백% 전투기 등을 몰던 군 출신이다. 국내 항공사의 역사가 짧은 탓에 자체 기장양성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군 출신 기장이 정신력·건강상태가 대체로 양호하고 현역시절 집중적인 조종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민항 기에 대한 재교육과 적응훈련만 거치면 민간인보다 더 우수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항공전문가들은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위험비행도 감행하는 등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안전보다는 군인정신이 더 앞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악천후 등 어떠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맡은바 임무를 수행해야 하고 위험비행 후 착륙이 미덕이 될 수 있는 환경에서 잔뼈가 굵은 군 출신 기장들이 자칫 위기상황에서도 착륙했다는데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는 경향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항공사들도 이를 의식해 기장들에게「빨간마후라」정신을 빼는데 교육의 주안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의 현역기장 3백73명 중 외국인 63명을 제외한 3백10명 전원이 군 출신이고 아시아나 항공도 1백29명 중 외국인 64명을 제외한 65명 모두 군에서 비행기를 몰던 사람들이다.
군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비행경력이 있어도 바로 민항 기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항공법에는 전투기 등 군용 제트기는 최대 1천5백 시간, 수송기 등 프로펠러 기는 1천시간, 헬기는 5백 시간만 인정해 주고 있다.
일단 민항에 들어오면 부기장으로 1천5백 시간을 비행해야 한다. 제트기 출신의 경우 군과 민항 합쳐 3천시간 이상이 돼야 하며 최소 3년 이상의 민항 비행경력이 있어야 비로소 기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애로점=조종사는 안전운항을 위해 비행하기전 우선 자신의 건강을 항상 쾌적한 상태로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조종사는 과로를 피하기 위해 월90시간 이내의 비행을 해야 하며 하루 5회 이상 착륙을 못하도록 돼 있다. 또 분기 당 2백50시간, 연간 1천 시간이상 비행이 금지돼 있다.
기장들은 한결같이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장거리 노선을 뛰는 국제선기장의 경우 한 달에 집에 있는 시간은 고작 10∼12일에 불과하다. 3분의2는 집을 비우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아버지 노릇, 남편 노릇을 제대로 못해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
또 시차적응의 어려움이다. 미주 등 장거리 비행에 대개 5박6일이 걸린다. 1회 비행 후 쉬는 시간은 1∼3일 정도. 하루는 시차적응에 보내고 나머지는 다음 비행을 위해 푹 쉬어야 한다. 휴식중 절대로 과격한 운동을 못하고 심지어 오토바이도 탈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혹시 기장이 다칠 경우 비행스케줄에 큰 차질이 오기 때문.
기장들은 『기장의 생활이라는 게 시차적응과 비행을 위한 휴식뿐』이라며『외국을 자주 드나드는 화려한 직업이라는 일반인의 생각은 기장의 생활을 잘 몰라 하는 말』이라고 한다.
◇대우=항상 사고의 위험이 있는 만큼 이들이 받는 급여는 높다. 항공사에서 조종사들은 공무원의 별정직과 같다. 호봉이나 수당을 일반직들과 달리 책정한다.
대한항공의 15년차 기장의 예를 들면 기본급에다 비행수당까지 합하면 월평균 6백만원 정도를 받는다. 급여수준이 높은 만큼 생활수준도 대부분 높다. 기장의 정년은 55세. 그러나 개인적으로 기량을 평가받을 경우 5년을 더 연장해 준다. 퇴임 후라도 대부분 항공사의 운항훈련원 등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며 후배들을 양성할 수 있다.
◇직급=기장도 기장·선임기장·수석기장의 직급으로 나누어진다. 선임기장은 기장으로 6년 이상을 근무해야 하고 수석기장은 선임기장으로 5년 이상을 더 근무해야 한다..

<「전무기장」도 나와>
대한항공의 경우 이사기장까지 있다. 이사기장은 입사 후 20년 이상 수석기장으로 근무해야 하고 수석기장 승격 5년 이상이 경과해야 된다..
대한항공은 현재 9명의 이사기장이 있고 5명이 기장으로서 임원에 선임됐다.
임원이라 하더라도 현역기장으로 한 달에 1∼2회씩은 꼭 비행을 한다. 현역기장으로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은 조세환 대한항공 전무. 조 전무는 운항본부장 및 김포지역본부장도 겸하고 있다. 51년 공군조종간부 2기로 첫 조종간을 잡은 그는 66년에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항공공사(KAL)에 입사, 민항 조종사가 된 이래 현재까지 1만8천시간을 비행했다.
◇기장1호=조종사들은 국내 제1호 민항 기장으로 김양욱씨(68·서울 강남구 방배동)를 꼽는다. 김씨는 일제 때인 42년 조선총독부 교통국 조선국방항공단 교관으로 시작해 6·25전인 49년 공군소위로 임관했다.
김씨는 60년 국내 최초의 민항인 KNA(Korea National Airline·대한국민항공사·48년 설립)에 발을 들여놓은 뒤 62년 내국인으로는 첫 기장이 됐다. 김씨는 87년 대한항공에서 정년 퇴임할 때까지 총 2만7천시간을 비행했으며 퇴임 후 91년까지 대한항공 인천운항훈련원에서 교관으로 일했다. <정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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