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파탄 부른 「강압수사」/자살기도 김종경씨의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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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화성사건 무혐의후에도 경찰 끈질긴 감시/“고문실상 밝혀주세요” 유서에 “억울” 주장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에 연행됐다가 풀려난 뒤 계속 검찰의 감시를 받던중 3일 오전 결백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기도,(본보 3일자 22면 보도) 중태에 빠진 김종경씨(41·수원시 팔달구 매탄2동)는 정말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가.
『어머니 제가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지만 결백합니다.』 『형님 경찰에서 억울하게 당한 고문의 실상과 저의 진실을 꼭 밝혀주세요.』 김씨가 자살을 기도하기전 어머니와 형에게 쓴 유서에는 경찰에 대한 분노와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김씨가 처음 경찰에 연행된 것은 92년 6월.
당시 화성의 한 목장에서 목부일을 하던 김씨는 한 「심령술사」의 제보를 받은 경기도 경찰청에 의해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려 6개월간 경찰을 오가며 지루한 조사를 받았다. 이때 무혐의처분을 받은 김씨는 그러나 지난달 4일 같은 내용의 제보에 따라 다시 서울 서대문경찰서로 연행된 뒤 열흘만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경찰에서 풀려난 후 범인으로 몰린 수치심과 억울함으로 남편은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때때로 경찰에서 받은 고문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증세가 왔고,언제 또 다시 경찰에 연행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문을 꼭 걸어 잠근채 이불속에서 떠는 등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여왔어요.』
부인 오윤자씨(40)는 『경찰의 감시눈길 못지않게 마치 남편이 화성사건의 범인인 것처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더 따가워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증거없이 자백 강요·가혹행위 등에 의존한 경찰의 무리한 육감수사가 한 시민과 그 가족을 파멸로 몰아놓은 셈이다.
김씨를 포함,화성연쇄살인 사건이 만들어 낸 인권유린 피해자는 화성사건이 처음 일어난 86년 9월이후 지금까지 모두 6명.
특히 90년 12월18일 경찰조사를 받았던 차겸훈씨(당시 38)는 무혐의로 풀려난지 4시간만에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며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기도 했다. 이밖에 민모(23·오산시 양산동)·박모(29·오산시 원동)와 윤모(19) 등도 연행돼 각각 1∼2건의 변호인 접견과정 등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진술을 번복해 석방되기도 했다.<화성=엄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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