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지 소개·평 잇따라|불서 소설『운현궁』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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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향가와 고려청자를 알고 만리 동 달동네와 회현동 뒷골목을 체험한 30대의 젊은 프랑스 여자가 민비의 생애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발표해 프랑스 문단에 화제가 되고 있다.
『운현궁』(파리 플롱 출판사·4백85쪽)이란 제목의 이 소설에서 저자인 쥘리에트 모리요씨(33)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명성황후 민비가 태어나 일본인 자객들에 의해 시해되기까지의 기구한 일생을 그려냈다.
민비 스스로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을 빌린 이 소설은 구한말의 역사적 격동기 속에서 한 여인의 비운에 얽힌 음모와 야망·애증을 서사적이고 시적인 문체로 뛰어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재의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평단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
프랑스 주요 문예잡지 등에 이 소설에 대한 소개와 평이 잇따라 실리고 있고, 상업적으로도 돼 성공가능성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82년부터 7년간 우리나라에 머무르며 한국사회 구석구석을 직접 체험한 모리요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서정이 소설은 한국에 대한 애정의 결실』이라면서『한국을 사랑하기에 한국 역사를 알게 됐고, 또 한국 근세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민비의 삶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3년전 구상에 착수, 약1년반의 자료수집기간을 거쳐 이 소설을 완성한 그녀는 집필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한국 근세사의 얽히고 설킨 복잡한 구성을 프랑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간결하게 요약하는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소설 집필을 위해 그녀는『운현궁의 봄』등 한국작가가 쓴 관련소설은 물론이고 대원군에 관한 서적,『조선실록』, 영·불·독어 등으로 된 당시 외교문서까지 참고했다.
어렸을 때 펜팔로 우연히 사귄 한국친구를 통해 한글글자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는 그녀는 그것이 계기가 돼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공부했고, 파리 국립 동양어 대학에서 나도 향에 대한 연구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후 한국에 건너와 7년간 대학교 불어강사 등으로 일하며 대학사회에서 달동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반을 직접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달동네 단칸방에서 하룻밤에 세 번씩 연탄도 갈아 봤고, 사회 밑바닥의 기층 민들과 어울리며 소록도에서 난지 도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한국사람이 하는 그대로 한다」는 것을 한국에 있는 동안의 신조로 삼았다는 그녀는 책이 아닌 생활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싶었으며 이는 결코 위선이 아닌 진정한 애정의 결과였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에 체류하며 자유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한국어는 물론이고 일본어·영어·독일어·러시아어·체코어·인도네시아 어·이탈리아어 등을 구사할 줄 아는 타고난 어학 재능을 갖고 있기도 하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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