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관계자들 서로 「딴소리」/「평화의 댐」건설 반대의견 있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진척봐가며 대응… 신중론제기”/이기백씨/“관계부처 회의서 이견 없었다”/이학봉씨
「평화의 댐」건설 결정 과정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의 증언이 뒤늦게 쏟아지고 있다.
이학봉 전 안기부2차장은 『물폭탄의 공포』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규효 전 건설장관은 『최악에 대한 대비』라고 변명하고 있다. 이기백 전 국방장관은 『국방부는 반대했다』며 안기부를 원망했고 토목학회에서는 『2백억t 운운은 소도 웃을 얘기』라고 개탄했다.
이렇듯 처했던 입장과 현재의 처지에 따라 사람들의 말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다. 아직 감사원이 내막을 파헤치지 않아 어느쪽 말이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다.
○“소도 웃을 얘기”
지금까지 나온 증언들을 분석해 보면 평화의 댐은 우리사회 공동체가 책임져야할 「슬픈 코미디」일 가능성이 점차 엿보인다.
건설·토목학 교수들은 북한 금강산댐의 저수량 「2백억t」은 너무나 터무니 없는 계산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86년 안기부는 수공 비상사태라는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정부의 4부장관은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에게 『늑대가 온다』고 외쳤던 것이다.
「평화의 댐」은 처음부터 안기부가 착상하고 주도했으며 국민성금·댐건설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이끌었던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 전 안기부2차장은 『토목수리학 전문가 10여명이 안기부 주관하에 금강산댐의 위력을 분석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물론 안기부의 작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결심과 지휘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당시 안기부의 고위관리는 『안기부와 여러 부처는 판단자료를 제공했고 댐조성의 시기는 최고결재권자가 최종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꼭 검증해야할 대목이 하나 있다. 정부내에서 과연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느냐는 문제다.
이는 5공말기 정권의 건강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잣대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 반대없이 안기부가 좌지우지했는지,아니면 실낱같았을 지는 몰라도 「반대」 「견제」의 소리가 있었는지는 규명될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안기부서 고집
먼저 「국방부는 반대했다」고 하는 이 전 국방장관의 증언이다.
『서두른 쪽은 국방부가 아니었다. 국방부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안기부는 북한은 전인민을 동원해 금방 댐을 만들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하루밤새에 이루어질 수는 없으니 금강산댐의 진척을 봐가며 대응하자」고 신중론을 냈다. 안기부는 듣지 않았다. 「사후약방문」이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안기부는 절대적이었다.』
이 전 안기부2차장은 이 주장을 부인한다. 『국방부에서 그렇게 반대의견을 냈던 기억이 없다. 지금 와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이해할수 없다.』
당시 정부는 금강산댐에 대한 대응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수차례 열었다고 한다. 청와대·안기부·국방부·국토통일원·건설부·문공부의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웅희 당시 문공부장관은 이렇게 증언했다.
『안기부가 내놓은 금강산 댐 자료를 놓고 참석자들이 질문도 하고 토론도 했다. 그러나 그런 회의에서 반대의견이 나왔었다는 기억은 없다. 참석자들은 북한의 위협이 있다면 국가안보를 위해 대응책을 서둘러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런 회의 말고 다른 장소나 채널을 통해 국방부가 반대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이 전 건설부장관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참석자들 토론
『아주 중요한 사안이어서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성급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할 수 없었다. 나같은 경우 안보결정과정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이번 감사의 핵심은 「금강산 물폭탄」 얘기는 과연 부풀려진 것인지,그렇다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국민을 속였는지를 밝혀내는 일이다.<김진기자>
◎금강산댐 수공위협 정밀조사/정부,과기연제안 묵살/과기연 성기수박사 주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평화의 댐이 건설되던 86년 북한의 금강산 댐은 인공위성 관측 사진에 보이지 않았으며 수공도 걱정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금강산댐 연구 계획서」가 작성됐으나 과기처에 의해 묵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개발정보센터 소장 성기수박사(60)는 17일 『86년 정부가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 중단을 촉구하며 평화의 댐 건설을 제안했으나 이때 북한의 금강산댐을 착공했는지 알 수 없었으며,이와 관련해 국내 학자들이 정식 조사를 제안했으나 과기처에 의해 묵살됐다』고 밝혔다.
성 소장은 『86년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산하 시스템공학연구센터에서 근무하며 남한강 수계 등 국토관리 프로젝트를 맡고 있던중 정부의 평화의 댐 건설 추진에 의심을 품고 같은해 10월부터 과기연이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지형 및 강우자료와 인공위성으로 관측된 자료 등을 통해 기초조사를 벌인 결과 정부발표와는 달리 북한의 금강산 댐 착공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으며 수공 위협도 우려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성 소장은 『이에 북한의 금강산 댐의 규모 및 수공 가능성 등 종합적인 영향력을 과학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관련 학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연구조사반을 편성하는 등 「금강산댐 연구 계획서」를 작성,과기처에 제출했으나 예산 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성 소장은 『당시 이같은 연구가 과학자들에 의해 이뤄졌으면 평화의 댐 건설이 현재와 같이 큰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소장은 또 『이 보고서 내용이 중앙일보(88년 8월31일자)에 단독보도돼 그해 가을 국회때 야당의 질의자료가 되기도 했었다』고 밝혔다.<이원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