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조-그 얼굴의 낙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창백한 낮달이
멀건 하늘에 떴다
허열의 내 맥박이
마구 심장을 울려
자잘한 꽃밭의 말은
알아듣지 못했네.
앞서 간 그 사람
우리들 모두의 사람
애터진 진달래도 지고
흥건한 이 세상에
지금은 꽃이 파리로
흩날리는 우리 얼굴.
모두 흘러간 뒤 끝에
범람하는 강물처럼
잠긴 빗장 다시 풀고
비릿한 바람에 안겨
발그레 새댁적 모습의
울어머니 만난다.

<시작노트>
계절이 바뀌고 세상이 온통 환한 꽃빛깔이 되었다. 마구 가슴이 설렜다. 새로 태어난 생명들의 의미가 환생으로 느껴져 불현듯 뜨거운 환희로 한없이 들떴다.
하지만 그도 잠시, 꽃이 져버려 꽃밭이 허전하다. 텅빈 마음 둘레나 밟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둔 밤바람이 불어온다. 코끝에 젖는 향기, 꽃향인지 저세상 계시는 엄마 내음인지 문득 현기증이 인다.
피는 꽃도 지는 꽃도 끝없는 원융무애로 나를 사로잡는다.

<약력>
▲42년 전북전주 출생
▲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시조 『골동품』당선
▲시조집 『비가』, 수필집『감꽃목걸이』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