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의 외경 매번 느껴요|초모랑마 등정 끝낸 허영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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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계적 솔로 알피니스트 허영호씨(39)가 지난달 13일 중국루트로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어·8천8백48m)를 등정하고 최근 귀국했다.
82년 히말라야의 마칼루봉(8천4백81m)을 시작으로 8천m이상 거봉 여섯개를 대부분 단독으로 올라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세계최고수준의 산사나이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허씨.
귀국하자마자 내년 초로 예정된 남극 최고봉 빈선매시프(5천1백4m)등정과 남극점 도보원정 준비에 바쁜 허씨를「스포츠 초대석」에서 만나 산 이야기를 들어본다.
-고상돈씨나 일본의 우에무라 나오미처럼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산에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각오라도 돼있습니까.
▲죽는다고 생각하면 산에 오를 이유가 없지요. 아직은 자신감이 있습니다. 위축되면 못오릅니다. 초모랑마 경우도 베이스캠프에서 5박6일만에 등정하고 네팔로 내려오기까지 7박8일만에 끝냈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의 반대가 있을텐데요. 가정에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소리는 안듣습니까.
▲집사람(이영옥·34)은 항상 반대파지요. 89년 히말라야 로체봉(8천5백16m)단독 등정 때 집사람과 아들(재석·국교3)을 베이스캠프까지 데리고 갔었는데 충격이 컸던가봐요. 당시 3명의 외국대원이 부근에서 죽어 나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랐던 모양인지 그 뒤론 더욱 산에 가는 것을 못마땅해합니다. 가정에 소홀한 것에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지요.
-흔히 하는 질문이지만 산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연을 대하면 마음이 자유롭습니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오르기까지는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이 따르지요.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한 비브왁(Bivouac·노숙)과 수천m의 얼음 절벽 위에서 아찔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상에서의 기쁨은 정반대지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희열이 넘쳐 속으론 운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겁니다.
-이탈리아의 라인흘트메스너처럼 단독원정으로 유명했던 앞서의 우에무라는『혼자 가야 최고의 만족을 얻는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허영호씨의 경우는.
▲제가 처음 8천급 고봉을 오른게 82년5월 마칼루입니다. 그때 완전히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올라보니 이 정도면 체력적으로 동반자 없이, 또 무산소로 어느 산도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10월 도전한 곳이 히말라야 마나슬루(8천1백56m)입니다. 그때도 무산소로 성공했지요.
-초모랑마에서와 같이 중국루트 등정-네팔 하산이라는 새로운 세계기록을 세워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처럼 보상금이 주어지지도 않는데 생계는 어떻게 꾸립니까. 우에무라는 영웅으로 추앙받아 원정 때마다 범국민 후원회가 도움을 주었고, 메스너는 유럽최고의 인기 산악인으로 CF출연·저술·강연으로 원정 기금을 마련하고, 인류 최초로 8천m이상 고봉(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에 올랐던 프랑스의 모리스 엘조그는 샤모니시장-체육장관-IOC위원까지 지냈는데 수백만 명의 산악인이 있다는 우리에게는 그런 풍토가 없지 않습니까.
▲91년까지 근무하던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수입은 끊어진 상태지요. 요즘은 강연·원고료 등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만 경비조달이 어려워 하고싶은 원정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의 유명 산악인들에 대한 대접이 부럽기는 하지만 언젠가 우리도 그런 날이 오겠지요.
-허영호씨는 보통 체구에 나이도 40세가 가까운데 어디서 그런 초인적인 힘과 인내력이 나옵니까. 초모랑마 무산소 등정-횡단은 세계 최초고 에베레스트 겨울등정은 세계 두번째, 마나슬루 무산소 단독 등정도 세계 네 번째를 기록하는 등 한결같이 어려운 시도였는데.
▲저는 1m72㎝·65㎏입니다. 다만 폐활량이 6천㏄로 보통 사람(3천5백∼4천5백㏄)보다 크고 맥박도 1분에 60정도입니다(마라토너 김완기의 출발 전 맥박 수는 55, 고산족 셰르파는 50내외). 평소 매일 10㎞씩 달리고 웨이트트레이닝도 합니다. 담배는 물론 술도 거의 안하다시피 하고요. 전에는 원정전 하루 30㎞씩 러닝했지만 요즘은 기초체력만으로 힘든줄 모르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5∼6년 더「강도 높은 산」에 계속 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엔 매킨리를 하루만에 올랐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비용이 확보 되는대로 올 하반기나 내년 초께 남극점 및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선매시프에 가려고 합니다. 이로써 세계 6대주의 최고봉과 극점(남·북극)을 모두 밟게 됩니다. 저술활동과 산악 및 극지 전시관을 세워 후진들에게 꿈과 모험심을 심어주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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