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명 가족 품에 돌려보내 주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가족들은 1일 하루 종일 극도의 불안감에 떨었다. 오후 4시30분 협상 시한이 지난 뒤 '4명 추가 살해 위협'→구출 군사작전 개시→구출작전 오보로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경기도 분당의 피랍자 가족모임 사무실에 모인 가족들은 '군사작전 개시'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자 일부 여성 가족이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우리 아이 좀 살려 달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제창희(38)씨의 누나 제미숙(45)씨는 오후 8시부터 교회 본당 2층에서 열린 '무사귀환 기도회'에 참석했다 보도를 듣고 가족모임 사무실로 뛰어왔다. 제씨는 "군사작전을 안 한다고 해 놓고 이게 무슨 일이냐"며 울음을 터트렸다.

가족 대표 차성민(30)씨도 불안한 표정으로 연방 외교통상부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답변만 되풀이되자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나 오보라는 보도가 나오자 가족들은 다소 안정을 되찾았다. 차씨는 "최악의 사태라고 여기고 많이 놀랐지만 오보라는 뉴스를 듣고 다시 TV를 보며 새로운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오후 2시 가족들은 서울 세종로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지원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가족들을 대표해 제창희씨의 어머니 이채복(69)씨가 호소문을 낭독했다. 이씨는 "하루하루 피 말리는 시간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텨왔지만 배형규 목사에 이어 심성민씨가 희생당한 지금은 남은 21명조차 돌아올 수 있을지 희망을 품기 어렵다"며 울먹였다.

가족들은 "피랍자들은 봉사를 위해 죽음의 땅 아프가니스탄을 찾았던 만큼 우방국인 미국이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해 주리라고 믿는다"며 "평화적이고 인도적인 방법으로 무사귀환이 이뤄지도록 제발 도와 달라"고 말했다.

이씨의 호소문이 낭독되는 동안 가족들은 '내 자식을 살려 달라'며 오열했다. 가족들의 가슴엔 '우리 가족을 살려주세요'라는 흰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미국 대통령과 미국 국민 여러분, 우리 아이를 꼭 살려주세요" "우리 아이들을 우리 품에 안아보고 싶어요"라는 내용의 현수막도 내걸렸다. 피랍된 서명화(29).경석(27)씨 남매의 아버지 서정배(57)씨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 애들을 살릴 수만 있으면…"이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이에 앞서 가족들은 미국대사관에서 월리엄 스탠턴 부대사를 40여 분간 면담하고 호소문을 전달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휴가 중이었다. 스탠턴 부대사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다"는 뜻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랍자들이 소속된 샘물교회 박은조 담임목사는 이날 오전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박 목사는 "봉사단원들 중 또 한 사람이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을 만나면서 국민 여러분, 특히 유가족 여러분에게 엎드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강기헌 기자, 정재영 인턴기자, 분당=박유미 기자

▶관련 동영상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