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하사 “살해암장” 고백(5·18 진상을 캔다: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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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공륜 11대대 정규형씨 “교도소앞 산에 직접 매장”/“서너명 파묻는 장면도 목격”/89년 부엉산서 암장 발견된 40대남자 유골/연대교수 “곤봉같은 것으로 구타한듯” 감정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이 시민군을 무차별 사살한뒤 암매장했다는 공수부대원의 증언에 이어 89년 1월 광주시 월남동 부엉산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된 유골이 진압봉 등에 의해 구타·살해된 「광주」 희생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감정결과가 본사 특별취재반에 의해 처음으로 입수됐다.
80년 5·18당시 3공수여단 11대대 하사관으로 복무했던 정규형씨(37·서울 동대문구 장안동)는 17일 본사 취재반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시민군 수명을 사살,그중 1명을 암매장했다』고 폭로했다.
정씨는 5월23일 낮 광주교도소앞 운전학원 옥상에서 경계근무중 총을 든 채 교도소로 다가오는 20대 남자 등 3∼4명을 사살한뒤 1명을 교도소앞 길 건너편 야산에 매장장소 표시없이 직접 묻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이날 같이 근무중이던 11대대 저격수들이 교도소 정문으로 달려오던 지프에 조준사격,무장한 시민군 3∼4명을 사살해 야산에 묻는 것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정씨는 사살 사실을 당시 대대장 임수원중령에게 보고했으며 임 중령은 『수고했다. 신경 쓸 필요없다』고 말하면서 시체처리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내리지않아 다음날 오후 매장시체를 그대로 두고 광주비행장으로 철수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23일 오전 경계근무 투입때 당시 중대장으로부터 『교도소로 접근하는 자는 이유불문하고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88년 광주특위 청문회 당시 증인으로 나왔던 당시 공수부대지휘관들이 『일시적으로 시신을 처리할수 없어 매장장소를 표시해둔 가매장 사실은 있어도 몰래 암매장하지는 않았다』고 한 발언을 뒤집은 것으로 직접 자신이 암매장했다는 증언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연세대 치의대 김종열교수가 89년 5월6일 광주지검에 제출했던 부엉산 유골 최종감정서에 따르면 유골은 40대초반 남자로 「최소한 6년이전(89년을 기준으로 할때 83년이전)」에 숨졌으며 턱과 양쪽 뺨 등 3곳에 「작용면적이 작은 물체」의 빠르고 강한 외부 힘이 작용,치아 대부분이 손상을 입어 숨졌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학실히 단정할수 없지만 최소한 83년이전이란 83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 몇년사이에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작용면적이 작은 물체란 곤봉같은 무기로 보인다』고 말해 당시 공수부대가 휘두른 진압봉에 의해 구타당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89년 1월 유골발견당시 검찰측 부검의인 서울대 이정림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망한지 5년을 넘지않을 것』이라고 발표,5·18때의 유골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밝혔었다.
이 교수는 『당시는 정확한 감정이전에 외견적 소견을 얘기했을 뿐』이라며 『연대추정은 치아측정이 정확하기 때문에 곧바로 김 교수에게 의뢰했었다』고 밝혔다. 이 감정결과는 검찰이 문제의 감정서를 받아놓고도 4년이 넘도록 공개하지 않았었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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