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65일간 108명이 목표인물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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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설계는 스탠리 밀그램(Stanly Milgram)교수의 1967년 연구방식을 따랐다. 다양한 연령.지역.계층의 사람들이 몇 명을 거치면 특정 인물과 연결되는지를 실험하는 것이다.

연결망의 종착역인 목표 인물은 특정 지연이나 학연과 무관한 평균적 한국인으로 설정했다. 서울 출신, 현역으로 군대를 마치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한 40대 초반의 회사원 이재화씨가 선정됐다.

출발자(조사를 시작하는 인물)는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등 6대 도시의 인구.성.연령 비율에 맞춰 모집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해당 도시의 거주자에게 전화 통화로 조사 취지를 설명한 후 참가자를 모집했다. 조사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처음에는 무작위로 8백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실험에 참가하겠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4%(34명)에 지나지 않았다.

불참자들은 대개 "귀찮아서" "개인 정보를 밝히기가 꺼림칙해서" "조사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라며 거절했다. 특히 50대 이상 응답자에게 조사 내용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사팀(R&R 사회연결망 관리팀)은 "다단계 판매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차선책으로 조건에 맞는 사람을 조사팀 주변의 추천을 통해 확보했다. 성별.연령별.지역별 비율에 맞춰 모두 1백8명이 출발자로 선정됐다.

실험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각 출발자에게 목표 인물의 성.연령.거주지.직장.군복무 형태와 시기.출신학교.가족사항 등을 자세히 알려준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출발자는 개인적으로 아는 주변 사람 중 목표 인물을 알 가능성이 큰 사람에게 연락을 한다. 예컨대 주변에 목표 인물과 같은 학교를 졸업했거나 비슷한 시기에 같은 부대에서 군복무를 한 사람을 찾아 연락하는 식이다. 출발자에게서 연락을 받은 다음 단계의 사람도 조사팀에서 목표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뒤 마찬가지로 '목표 인물을 알 만한 또 다른 사람'을 찾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 최종적으로 목표인물이 연락을 받으면 실험은 종료된다.

조사팀은 연락망 조사에 개입한 모든 사람의 거주지.출신 지역.출신 학교.소득.성.연령.연락 수단 등의 기초 자료와 연결망의 성격(친구.동향.동창.군대 동기 등) 등을 파악해 조사 분석 자료로 활용했다.

조사는 지난해 9월 16일부터 11월 21일까지 총 65일 동안 이뤄졌다. 조사 기간 중 목표 인물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약 일주일 동안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1백8명의 출발자 중 51명이 첫 단계도 넘지 못했다. "적절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연락받은 사람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였다.

본 조사 결과의 의의는 크다. 미국에서 생산된 사회과학적 지식이나 정보가 한국에서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입증돼서다.

한국 사회에서 권력은 연결망 자체다. DJ정부 시절에는 전라도라는 지연과 광주 명문고교 중심의 학맥이, 노무현 정부에서는 부산이라는 지연과 부산상고라는 학맥이 구설에 오른 것처럼 말이다. 선거에서도 사회 연결망이 작용한다. 선거에 나선 후보는 혈연.지연.학연.직장연 등을 동원해 유권자에게 접근하려고 애쓴다. 권력이 사유화될수록 공적 연결망보다 사적 연결망이 우선한다. 사적 연결망을 공공의 이익보다 앞세운다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멀 수밖에 없다.

노규형 ㈜리서치 앤 리서치(R&R) 대표(정치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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