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깔따구 습격 사건' 배상 결정 … 해충 피해 첫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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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해시 안동골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창원(65)씨는 2005년 여름이 지옥 같았다. 그는 "밤이면 하늘을 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수많은 깔따구와 물가파리가 날아와 불을 켤 수도 없고 가게 문을 열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해 여름 진해시 제덕동.남문동.안골동 일대 주민들은 밤마다 곤충들의 습격을 받았다. 주민들의 눈.코.입으로 곤충들이 들어갔고 온몸이 가렵기도 했다. 곤충들의 배설물에서 나는 악취도 극심했다. 멀쩡한 마을이 하루 아침에 곤충천국이 된 것은 인근 부산신항만 건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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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 공사를 하면서 바다에서 퍼 올린 준설토를 쌓아 둔 곳에서 곤충들이 무더기로 부화한 것이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지난해 6월 분쟁조정위원회에 재정 신청을 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위원장 남재우)는 30일 "항만 공사의 건설 주체인 해양수산부는 피해를 본 진해시 9개 마을 주민과 상인 1357명에게 17억6396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런 결정은 유해 곤충 때문에 본 피해를 인정한 국내의 첫 사례다. 액수 역시 단일 환경분쟁 조정사건 배상액으로는 역대 최고 금액이다.

◆최고 배상액 어떻게 나왔나=분쟁조정위는 다섯 차례에 걸쳐 현장 조사를 하고 전문기관에 환경 조사와 피해액 산정을 의뢰했다. 분쟁조정위 김홍하 심사관은 "준설토 투기장에서 대량 발생한 유해곤충 때문에 주민들이 심각한 정신적 피해와 영업 손실을 봤다"며 "해양수산부도 이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피해는 6개월(2005년 5~11월)간에 대해서만 인정됐다.

준설토 투기장과의 거리에 따라 1인당 정신적 피해액을 하루 2000~8000원씩 계산했다. 관광객 감소로 인한 음식점 등의 영업 손실액은 2005년 과세표준액의 8%로 계산했다. 경제적 손실까지 감안할 때 최고 800만원을 배상받는 주민도 있다. 해충의 사체와 배설물로 인해 페인트칠을 해야 하는 건물의 피해 배상금은 1㎡당 5000원, 선박과 화물차의 세차비용은 1주일당 5000원, 승용차 세차비용은 1만원으로 계산했다. 이런 계산법에 따라 1324명의 주민 1인당 4만8000원~8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곤충 피해 보상=김 심사관은 "국내외에서 곤충 피해 보상 요구는 있었지만 실제로 배상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95년 전남 여수시 광양제철소 조성 때도 준설토에서 모기떼가 발생해 인근 마을을 덮쳤다. 주민들이 피해보상을 요구했지만 여수시는 1억1800만원을 들여 방제 활동만 했다. 일본에서는 77년 도쿄 하네다 공항 확장 사업과 관련해 매립지에서 발생한 물가파리 떼가 인근 주택가를 덮쳤지만 배상은 없었다.

분쟁조정 신청을 한 주민대표 김종민(49)씨는 "100%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주민설명회를 열어 동의를 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돈을 물어주게 된 해양수산부 항만개발과 송장현 주무관은 "다른 항만공사에 미칠 영향과 피해액 산정의 타당성을 검토해 수용 여부를 정하겠다"고 말했다.

결정을 수용하면 해양수산부는 2008년도 예산에서 배상금을 지급한다. 양쪽 당사자가 이번 결정에 불복할 경우 60일 안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강찬수 기자

◆중앙환경분쟁조정위=91년에 환경부 산하에 설치됐다. 1명의 상임위원장과 8명의 비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비상임위원은 법률.환경.보건 전문가가 맡는다. 배상 신청액 기준으로 1억원 이상의 사건을 연평균 200건 정도 담당한다. 1억원 미만의 사건은 시.도 환경분쟁조정위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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