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빠진 궁택정권/「캄」 파병 일인 잇단 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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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크메르루주 총선 방해속 「감시요원」 예정대로 파견/희생자 늘 가능성 많아 진퇴양난
일본이 캄보디아 문제로 들끓고 있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평화협정이 깨지고 다시 전화에 휩싸일 것같은 조짐이 보이는데다 현지에 파견된 일본인이 잇따라 숨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는 일본이 지난해 제2차세계대전후 처음 군대를 파견한 지역으로 캄보디아에서 자위대 역할과 자위대원안전문제는 앞으로 일본의 대외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일본은 현재 자위대원 6백명을 포함,8백64명을 캄보디아에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대립하고 있는 캄보디아 4개 정파간 정전합의 ▲자위대 참가에 대한 분쟁 당사자들의 동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 중립엄수 ▲이상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자위대 철수 ▲무기사용은 자위대 안전 등 최소한으로 한정한다는 조건아래 파견됐다. 자민당이 지난해 6월 자위대 해외파견에 대한 일본 사회의 우려를 불식하고 참의원에서 자위대 해외파병을 위한 유엔평화유지활동협력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인 공명·민사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내건 조건이다.
일본정부가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에 합의해가며 자위대를 파견하려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걸프전때 1백30억달러나 되는 막대한 전비를 지불하고도 전후처리에 아무런 발언권도 갖지 못했던 일본은 무력의 뒷받침 없는 경제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지난달 선거감시 자원봉사자가 무장괴한의 습격으로 숨진 이래 4일 또 일본인 문민경찰이 살해됐다. 특히 이번에 숨진 문민경찰은 ▲캄보디아과도행정기구(UNTAC)군사요원들의 호위아래 이동중 습격당했고 ▲일본정부가 정식 파견한 요원이다.
사회당 등 야당은 자위대 파견의 전제조건이 무너졌다며 즉각 철수를 주장하는 등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이에대해 고노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은 『이번 사건은 전면적인 전쟁상태가 아니며 파리평화협정에 따른 정전합의가 무너진 것도 아니다』며 일본정부는 자위대원을 철수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오는 23일 실시될 캄보디아총선감시를 위해 12일 문민경찰 약50명을 예정대로 파견하겠다고 했다.
일본으로서는 현상황에서 일본인의 안전을 위해 혼자 철수할 수가 없다.
일본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물론 『역시 일본은 약삭빠른 나라』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정전합의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UNTAC가 손을 들기 전까지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캄보디아에서 앞으로도 일본인 희생자가 계속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크메르 루주는 총선을 거부하고 파리평화협정에 따른 무장해제도 거부하고 있다. 또 선거가 평화적으로 치러져 새정부가 들어설 경우 크메르 루주의 입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 선거를 방해하고 있다. 이 경우 일본 자위대요원·문민경찰·자원봉사자들은 목표가 될 확률이 높다.
일본인 희생자가 늘어날 경우 가뜩이나 인기가 없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정권으로선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자위대 철수를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는 앞으로 미야자와정권을 계속 곤경으로 몰아넣을 것이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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