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 국제금융실 외환딜러 김정태·최지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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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시시각각 변하는 외환시세 때문에 가슴 졸이며 울고 웃는 장면이 꿈속에서도 생생히 나타난다는 외환딜러.
전세계 외환딜러와「제로섬」을 놓고 다투는 만큼 한눈팔 여유 없이 치열한 삶을 사는 직종이다.
체력과 순발력·판단력을 두루 갖추고 거래 공용어인 영어까지 구사해야 하는 이 전문직종에 국내 시중은행으로서는 처음으로 여성들이 등장, 활약하고 있다.
제일은행 본점 20층 국제금융실에 근무하는 최지영(26)·김정태(27)씨가 바로 그 주인공들.
외국계은행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파리바은행에는 전문 딜러의 길을 가는 여성이 있지만 시중은행으로서는 이들이「제1세대 여성 딜러」인 셈이다.
소속은행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K은행의 한 남자 딜러가 국제 외환시장의 장세를 잘못 읽는 바람에 2, 3년 전 외환거래에서 3백50억원의 환차손을 내고 그만 두어야 했던 사례를 되뇌며 이들 딜러들은 실수를 경계한다. 이로 미루어 여성 딜러들이「공인된 큰 손」임을 짐작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제일운행의 경우 담당딜러들이 하루 거래하는 외환량은 1천5백만달러 정도.
시드니·동경·런던·뉴욕외환시장 전광판의 불빛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여성딜러들의 눈빛은「사냥감을 찾는 맹견」의 그것처럼 빛난다.
연세대 경제학과 출신인 최씨와 고려대 신방과 출신인 김씨가 남자동료들과 종합해 내린 시사판단「코멘트」는 국내 2백여 기업체에도 매일 11시쯤 보내진다. 때문에 이들이 자칫 판단착오를 일으키면 제일은행에 막대한 환차손을 안기는데 그치지 않고 국내 대기업의 외환까지 잡아먹게 된다. 그 정반대의 상황도 상상하기 쉽다.
『그래서 국부를 지키는 일선의 첨병이라는 자부심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해요.』최씨의 말이다.
3년째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이들이 외환딜러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지점근무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치열함에 도전하고 싶던 차에 지난해 5월 본점의 딜러 희망자모집에서 통과되면서.
금융단 연수 15주와 미국 선물 중개회사인 「레프코」 연수 2개월, 그리고 현장실습을 거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딜러 업무에 투입됐다.
『외국에선 딜러는 20대 초반에 시작해 30대 중반에 환갑을 맞는 게 보통이래요. 그만큼 상황판단과 두뇌회전이 빨라야 하지요.』
그래서 1주일에 두 번 꼴로 오후11시 이후근무(평일 오후7∼8시 퇴근)까지 해야함에도 아직 미혼인 최씨와 김씨의 가슴은「도전과 응전」으로 항상 설렌다. <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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