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joins.com] 칡잎에 가득 담아온 산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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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 달 전 사진을 찍기 위해 들판으로 나갔다. 뽕나무 오디가 까만색을 땅에 물들이고 밭에는 도라지꽃이 하늘거리며 바람과 춤을 추고 있었다. 카메라에 사진을 담다가 산딸기를 발견했다. 빨간 딸기가 탐스럽게 열려 있어 허겁지겁 입에 넣고 달콤함과 쌉쌀한 맛을 보았다. 그렇게 딸기를 따다 칡넝쿨을 보게 됐다. 그 순간 나는 딸기를 따지 못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딸기와 칡넝쿨…. 그것들을 보는 순간 하늘로 먼저 가신 ‘아부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낙농업을 하신 아부지는 여름이 되면 늘 풀을 찾아다니며 베어 오셨다. 하루 종일 풀 베는 일을 반복해도 늘 모자랐다. 그런 와중에도 아부지는 늘 자식 사랑이었다.

 철없던 나는 오후에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시는 아부지를 기다리곤 했다. 지게 속이나 리어카 풀 속에 혹 내게 주실 먹거리가 없나 하고 고개를 쭉 빼곤 했던 것이다. 그런 나를 위해 아부지는 어김없이 먹거리를 구해 오셨다. 그중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산딸기였다.

 그땐 비닐 봉지도 귀했던 시절이라 딸기를 따오려면 따로 그릇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부지가 선택한 게 칡잎이었다. 칡잎은 넓적하고 커서 뭔가를 담기에 좋았던 것이다. 아부지는 잎을 잘라 깔때기 모양으로 잘 오므린 뒤 거기에 산딸기를 가득 따셨다. 그리고 긴 풀로 잘 동여매 넝쿨째 지게 옆에 걸어 집에 오셨다. 혹시라도 풀 속에 넣으면 딸기가 뭉개질 것을 걱정하셨던 것이다.

 아부지 팔뚝은 딸기 가시에 긁혀 작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런 아부지가 딸기를 따면서 과연 맛을 보기나 하셨을까?
 한두 개는 맛보셨겠지만 자식을 위해 그저 따오기만 했을 게 분명하다.

 나중에 내가 커 동생들이 나처럼 아부지의 딸기를 기다리다 먹는 것을 지켜볼 나이가 됐을 때 나는 비로소 아부지 팔뚝에 생긴 상처와 딸기를 주려는 아버지 마음을 알게 됐다.

 나도 딸기를 따서 칡잎에 감싸 내 아이들에게 갖다 줬다. 그러나 어릴 때의 기억과 아부지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차마 그 딸기와 칡넝쿨을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다. 눈물이 날까봐서다.

blog.joins.com/k031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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