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러시아 비사 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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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가 과거정권 비사에 탐닉해 있는 것과 비슷하게 올봄 미국 독서계는 냉전종식의 내막에 심취돼있다. 이 역사적 사건의 전말은 뭇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하지만 이 책은 저자들의 면모, 또 그것이 쓰인 방식마저 독특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옥스퍼드대·하버드대를 거쳤으며 CNN해설가이자 역사가인 베츨로스와 예일대·옥스퍼드대를 거쳐 타임지편집인, 그리고 현재 클린턴에 의해 러시아 무임소 대사로 일하고 있는 탈보트는 89년 기자로 있을 당시 앞으로 다가올 3년동안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 한편의 책을 쓰기로 약속했다. 모든 조짐들이 심상치 않아 시작하기로 했지만 그들은 당시만해도 그것이 바로 동유럽의 해방, 소비예트연방의 종식, 그리고 냉전의 종말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책은 최고위층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태진행의 전말, 주인공들의 면모. 극비리에 오고간 협상의 내용등 그런 회합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면 알 수 없을 사실들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저자들의 부시 전미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비판적이다. 지도자로서의 자질문제도 그렇지만 부시는 행정부와 공화당 우파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고르바초프가 미국의 지지를 그토록 필요로 했던 시기에 하나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여론·의회, 그리고 나토제국의 압력때문에 마지못해 고르바초프를 지지하기 시작했을 땐 고르바초프가 이미 실각의 위기에 처해 있었고, 그때문에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는 옐친마저 제때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등 부시는 공산당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태를 충분히 선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저자들은 평한다.
저자들은 고르바초프도 부시와 마찬가지로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국민전체의 강한 소망을제대로 수렴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베이커나 셰바르드나제와 같은 훌륭한 각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나마의 결과라도 얻을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일관된 평가다.
우리와 직접 관계되는 이야기로는 노태우전대통령과 고르바초프의 샌프란시스코회담을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회담이 당시 러시아가 냉전의 이넘적 테두리에서 탈피하려는 강한 의지를 세계에 분명히 보여준 계기였으며 한-러관계수립, 한국의 유엔가입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 회담은 소련 주미대사를 지낸 도브리닌이 외무부를 통하지않고 단독으로 주선했기 때문에 크템린내부에 불화가 있었다는 등의 비화도 소개하고 있다. <조승훈 동방서적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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