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조치훈, 94의 희망봉을 손에 넣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준결승 제1국
[제6보 (73~94)]
白.趙治勳 9단 黑.胡耀宇 7단

75에서 백 대마는 완전 포위됐다. 검토실에선 살긴 산다고 한다. 그러나 후수로 살면 방대한 흑의 외세를 제어할 길이 사라진다. 초반 신수가 실패한 후유증이 그리 쉽게 걷힐 리 없다. 검토실의 대화 속에서 감지되는 분위기는 백의 불리를 말해준다.

그런데 눈깜짝할 사이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후수 삶만 해도 고마운 처지라던 백이 선수로 살아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빛나는 희망봉과도 같은 94의 요소를 선점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단서는 희미한 실수로 지적된 전보 흑▲가 제공했다. 이 때문에 76, 78로 깨끗하게 끊겼고 80으로 막는 수가 선수가 되었다.

다음 자해행위와도 같은 84의 절단이 과감하고도 타이밍 좋은 호착이 되었다. 89까지 두점이 잡힌 것은 사실이지만 92가 확실하게 들으면서 상변 A의 후수 한집과 함께 대마가 완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 장면에서 선수와 후수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그러나 백이 시종 몰렸기 때문에 이 선수 삶조차도 처음엔 매우 구차하게 느껴졌다. 84, 88의 자해에 대해서도 아픈 지적이 잇따랐다. 그러나 천하의 요소라 할 백94가 떨어진 뒤 냉정하게 판세를 살펴보니 형세는 이미 혼미해져 있었다. 집은 균형을 이루었고 오히려 백이 앞선다. 흑은 중앙세력이 있지만 이 세력은 B와 C로 끊기는 약점이 있어 철벽은 아니다.

한마디로 흑은 길고 긴 공격을 통해 얻은 것이 없다. 후야오위 쪽에 뚜렷한 실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경로 속에서 침투와 파괴를 능기로 하는 조치훈에게 당하고 만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