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입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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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딸아이의 국민학교 입학날이 가까워오면서 아이방에는 새로운 물건들로 가득찼다.
외삼촌이 사준 멋진 가방이며 신발, 입학에 맞춰 큰집 언니·오빠들이 쓰던 동화책이며 멜러디언이랑 트라이앵글에다 각종 악기들, 이웃에 친분이 있는 분들이 아이 입학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사온 연필깎이·공책이며 필통, 아이가 꼭 갖고 싶었다는 36가지색의 크레파스가 3통이나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사준 새옷 한벌과 하얀실내화 한켤레.
딸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이 새로운 물건을 신어보고, 만져보고, 불어보고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며 손꼽아학교 가는 날을 기다렸다.
입학식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이는 부산을 떨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아침밥도 먹고 싶지 않다는 아이를 보면서, 어느새 저렇게 자라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구나 하고 대견스러워하면서도 앞으로 아이가 짊어질 공부의 멍에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은 벌써 친구가 되어 장난을 치고 재잘거렸다.
『아이들 재능은 각각 다르니 너무 공부만 잘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부모님들이 욕심을 조금 줄여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학부형들께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에 얼굴이 예쁜 담임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또 앞으로 공부하게 될 학교를 둘러보며 무엇을 느꼈느냐는 내 물음에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학교에서는 간식을 주지않으니까 아침을 많이 먹고 학교에 가야된다는 것을 느꼈어요』라는 것이었다.
아이의 천진스러움에 나는 한참을 웃다가 그만 엉뚱한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래 공부 좀 못하면 어떠니, 내일부터 아침밥 많이 먹고 가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면 되는 거지···.』
말을 하고나서『아차』했지만 주위담을 수도 없어 아직까지 나는 내가 한 말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경북상주시냉림동119 제2주공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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