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50년대부터 핵 두뇌 양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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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이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전격 탈퇴를 선언,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키는 가운데 핵 개발 역사에도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북한의 핵 시설은 「메카」격인 연변에 있는 30mw 원자로 및 핵 재처리 시설로 의심받는 방사화학실험실을 포함, 모두 16곳.
북한은 이 시설들을 무려 30여년간의 긴 세월에 걸쳐 개발해 왔다.
말하자면 북한이 핵보유 가능국까지 된데는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피해 끈질기게 노력해온 결과라 볼 수 있다.
북한이 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은 스탈린 격하운동 및 내부 권력투쟁의 시련기를 맞아 핵물리학자들을 대거 소련「두브나 핵연구소」에 파견하면서 핵개발에 눈을 돌렸다.「두브나 핵연구소」는 공산권의 핵관련 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다국적 연구소로 공산권 핵개발의 요람.
고급기술 단기습득 이후 북한은 매년 핵물리학자와 김일성대학 물리학과 학생 등 수백명을 이 연구소에 연수시켜 핵두뇌 개발에 불을 댕겼다.
특히 이 연구소는 서방측과 기술경쟁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낮아 북한은 단기간에 수많은 고급 핵기술을 얻었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매년 2백여명을 연수시키고 있어 현재 핵 관련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두 5천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만큼 핵전문가 층이 두텁고 고급두뇌가 많다.
56년의 첫 연수이후 북한은 59년9월 구소련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응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
이것은 물론「평화적 이용」이라는 전제가 불어있지만 북한에 핵시설을 들여오는 발판이 됐다.
이후 북한은 62년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는 한편 김일성대학 및 금책공대· 평성이과대학에 원자력학과를 신설, 핵개발 인력확충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65년6월엔 소련에서 처음으로 2사급의 연구용 원자로(IRT2000)를 도입, 핵연구에 본격 돌입했다.
73년엔 이 연구용 원자로의 열출력 용량을 73년 4사로 늘렸다.
이듬해 3월에는 김일성이「전국 공업자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독려했고 그 해 9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했다.
김일성은 이후 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다시 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핵에너지 개발을역설, 핵개발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소와 85년 원전 협정
87년2월에 가동된 영변의 30mw의 제2원자로는 이때 착공 됐다.
하지만 고급인력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기술환경으로 원자력발전소 자력건설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이에 따라 북한은 85년 12월 소련과 「원자력발전소에 관한 협정」을 맺으면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이와 때맞춰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핵발전소건설에 대한 지원을 받는 대신 NPT에 가입했다.
당시 북한·소련은 44만mw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 4기를 90년까지 건설키로 했으나 소련이 장비· 기술공급을 미뤄 북한은 독자적인 핵개발에 나섰다. 즉 85년은 북한 핵개발에 한 획을 긋는 전환점이 된 셈.
이 해에 북한은 영변에 다시 2백mw의 초대형원자로 건설에 들어갔다.
그리고 86년 12월엔 정무원산하에 원자력 공업부를 신설하면서 기존 국가원자력위원회를 통폐합, 비상한 주목을 끌었다.
영변원자로 곧 완공
당시 초대부장이 현재의 최학근부장으로 그는 수차례에 걸쳐 대표단을 이끌고 소련을 방문, 핵기술 이전의 막후 협상을 벌여온 핵전문가다.
이후 북한은 87년의 30mw 원자로 완공을 시발로 핵재처리 시설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영변의 방사화학 실험실 등을 암암리에 건설해왔다.
이와 함께 이때 북한은 정확한 시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평산· 박천의 우라늄 정련시설 등 각지에 핵관련 시설을 동시다발로 건설했다는 분석이다.
가동시 연간 50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영변의 2백mw 원자로도 완공을 코 앞에두고 있는 상태.
한편 이 시기에 북한이 제1차 과학기술발전 3개년 계획(88∼90년)을 실시해왔다는 사실은 음미해 볼 대목이다.
물론 이 계획은 과학 전분야와 관련을 맺고 있지만 북한은 이 기간 중 전자· 열공학· 화학 등 핵개발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분야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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