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달랐던 ‘하이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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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09면

마지막 회가 방영되는 순간까지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의 팬들은 ‘민용-민정’ 커플이 맺어져야 하느냐, 혹은 강유미가 죽은 거냐의 여부를 놓고 격렬한 설전을 벌였다. 통상 줄거리나 결말이 시청자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았던 여느 시트콤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하이킥’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젊은 부부가 1년여 만에 갈라서겠다고 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 등쌀에 화병이 나고, 실직한 아들은 부모의 눈치를 받고 있었다. 웬만큼 심각한 드라마 못지않은 갈등을 앞세워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상황을 만들고 여기서 웃음을 이끌어냈다. 과장된 캐릭터와 그들이 빚어내는 해프닝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던 기존 시트콤과는 달리, 캐릭터 간의 관계 변화가 궁금해 다음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이 시트콤이 보여주는 리얼리티는 ‘경제력에 의해 가족 내의 권력관계가 변화한다’는 전체 설정뿐 아니라, 주식투자와 ‘야동(야한 동영상)’에 일희일비하는 인물 설정, 화장실 장면과 분비물 소재 같은 세심한 부분까지 진짜 현실을 끌어들이는 과감함으로 빛날 수 있었다.

‘하이킥’은 초반부터 ‘야동순재’ ‘OK해미’ ‘식신준하’ 등 별명을 낳으며 방송과 인터넷 ‘폐인문화’의 상호작용으로 독특한 팬덤을 만들어낸 시트콤으로도 기억될 만하다. 그런 현상 역시 단면적인 캐릭터 설정에서 벗어나 ‘권위적이지만 귀여운’ 할아버지, ‘싸가지 없지만 옳은 소리 하는’ 며느리 같은 복합적인 인물을 그려내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처럼 전체를 관통하는 미스터리 서브플롯으로 흥미를 유지하거나, ‘연애시대’ 같은 멜로드라마의 애절한 감정 표현, 그리고 제목에 걸맞게 선보이는 액션장면 등으로 여러 장르의 퓨전 같은 재미를 느끼게 한 방식도 돋보였다. 다양한 시트콤 제작 경력의 연출자 김병욱은 이런 시도를 통해 ‘드라마 같은 시트콤’뿐만 아니라 ‘발랄한 8시반 드라마’라는 새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초반에 고부관계, 실직문제, 노년위기 등 현실적인 고민을 풍자해 박수 받던 것에 비하면 막판에는 민용-민정-윤호-신지를 둘러싼 멜로드라마로 집중돼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글 이윤정(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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