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교과서 왜곡 여전|조선침략-진출|3.1운동-폭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난지 11년이 지난 지금 일본교과서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지난 82년 교과서 파동이 났을 때 한국정부의 시정요구 각서를 받은 미야자와(궁택희일) 당시 관방장관은『정부의 책임하에 시정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었다. 그 미야자와가 총리로 있는 지금까지도 일본교과서의 한국사 부분 왜곡 서술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태영 국제교과서 연구소장(전호남대학장)은『한국논단』3월호에「수정작업의 걸림돌, 국수적 문부성 관리들」이란 논문을 싣고『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소장은 논문에서『당시 우리 국사편찬위원회가 지적한 19개 항목중 일본측은 83, 84년의 시정통고를 통해 15개 항목을 바로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상 극치 미미한 시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일본측은▲안중근 의사의 거사▲관동대지진▲정신대▲항일독립운동등 4개항에 대해서는 아직도 시정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전제하고 시정했다는 15개항의 실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선, 일본의 조선침략을 아직도「진출」이라고 표현한 책이 8종이고「손에 넣었다」「조선경영에 착수」등으로 쓴 책이 6종이다.
3·1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아직도「폭동」이라고 표현한 책이있다.
신사참배와 관련한 대목은「강요」라고 고친책이 2종,「추진」이라고 한책이 3종이고 그 이외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항일 의병 운동은「무장반란」에서「무장운동」 또는「반일의법항쟁」으로 고친 것이 12종일 뿐이다.
이소장은『이같은 예로 볼 때 일본 역사 교과서의 기술실태는 82년이나 93년 현재나 다르지않다』고 말하고『일본 교과서가 한국사 부분을 왜곡하는 것은 민족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부정적인 대한관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고려에 대한 왜구의 약탈행위를 일본의 국위선양처럼 묘사하는등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양국의 문화교류나 친선외교 관계는 설명하지 않고 적대관계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소장은『82년의 역사교과서수정 시도가 부분적인 용어 수정에 그친 것은 교과서 관계자들의 역사인식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 기인한다』면서『현재 널리 쓰이는 교과서들의 동향이 이를 입증한다』고 말했다.
동경서적출판사에서 나온『고교지리』는 한국은 아직도 쌀 생산이 적어 쌀을 수입하는 가난한 나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신상세 일본사』에는 조선어 말살정책, 신사참배 강요,징용·징병·정신대등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다는 것이다.
이소장은『역사교과서 수정을위한 일본측 공동연구자들은 일본 검정제도의 복잡성과 문부성 관리들의 국수적인 보수성 때문에 그들의 노력에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같은 한국논단에 「교과서 검정제도 이해 못하는 한국」이란 글을 쓴 동경학예대기미야마(군도화층)교수는 일본측의 83, 84년 왜곡부분 시정통보는 변경부분통지에 불과하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조현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