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화되는 「이인모씨 송환」/남북관계 돌파구 새정부 적극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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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씨 중병·대북정책 전향방침따라 재거론/“다른 좌익수와 법적용 불공평” 반대 의견도
비전향 빨찌산 이인모씨(76)의 송환문제가 다시 구체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보낸다」 「못보낸다」로 말도 많던 이씨 송환문제가 새정부 출범을 계기로 적극 검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박홍서강대총장·변형윤경실련공동대표 등 학계·종교계·법조계 인사 35명이 김영삼대통령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이씨의 북한 송환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건의했다. 이씨 송환문제는 작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측이 송환을 강력하게 요구,남북한의 현안문제가 된 이래 지금까지 「미결의 과제」로 남아있다.
1917년 함경남도 풍산군 개마고원에서 태어난 이씨는 6·25 당시 인민군 종군기자로 활동하다 인민군이 퇴각하자 지리산에서 빨찌산 활동을 하던중 52년 체포됐다.
이씨는 체포된뒤 사상전향을 끝내 거부,지난 88년 청주보안감호소에서 출소할때까지 복역했고 그후 한 민간 자원봉사자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해 왔다.
이씨는 현재 폐렴·흉막염 등 합병증으로 부산대병원에서 한달 이상 입원 가료중이나 위독한 상태여서 송환여부를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매듭지을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팀스피리트훈련·핵문제 등으로 남북한간의 모든 대화채널이 막혀있어 이씨 문제를 대화로 조만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 정부가 대북정책을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조정해 나간다는 방침아래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개선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신호탄으로 이씨의 송환을 검토할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현재 통일원 당국자들은 아직도 이씨 송환문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만큼 자꾸 이씨 문제를 거론하면 될 일도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실 정부는 작년 6월 이씨를 북한에 보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안기부가 『이씨를 무조건 보내서는 안되며 북한에 반대급부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아 정부가 이씨를 보내는 조건으로 동진호선원의 석방 등을 내세워 백지화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이씨가 작년말부터 중병으로 「오늘 내일」하는 신세가 되자 송환문제가 또다시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게 됐다. 현 정부도 지금은 대북정책의 여론을 모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최고위층의 결단이 없는한 빠른 시일내에 이씨 문제의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오는 10일 열리게 돼있는 통일관계장관회의에서 핵문제·남북경협문제 등과 함께 최우선적으로 검토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씨 송환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이씨 한사람을 보낸다고 해서 남한에 해로울 것도 없고 남북관계 개선에도 보탬이 되는만큼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씨 송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씨도 어찌보면 수많은 이산가족중 한사람인데 전체 이산가족 문제의 틀속에서 검토될 일이지 이씨만 「특별대우」해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또 법적인 측면에서 이씨를 송환할 경우 간첩을 포함한 여타 좌익수들에 대한 법적용의 형평성 문제가 일게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이씨가 송환되면 북쪽은 이를 대대적인 정치선전 거리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정부가 대북정책의 기조를 어떻게 세우고 남북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인 북한의 핵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이씨 송환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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