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대통령도 나선 '히잡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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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히잡(이슬람 여성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논쟁이 새해 벽두 독일 정가를 달구고 있다. 바덴 뷔르템부르크주를 비롯한 6~7개 주들이 의회 비준을 받아 이르면 올 상반기 중에 관청과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찬반으로 팽팽히 맞서던 논쟁에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이 지난해 말 가세하면서 불꽃을 튀기고 있다. 라우 대통령은 "독일 헌법은 종교적인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면서 "종교적 상징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히잡을 금지하려면 마찬가지로 십자가나 기독교 성직자의 의복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보수 정치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최대야당인 기민연합(CDU)의 앙엘라 메르켈 당수는 지난 1일 "독일에서 기독교의 전통을 부정하는 발상"이라고 라우 대통령을 비난했다. 볼프강 티어제 연방의회 의장도 3일 반박성명을 냈다. 그는 "십자가와 히잡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히잡은 종교적 상징일 뿐만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티어제 의장은 라우 대통령과 같은 소속당인 사민당(SPD) 출신이다.

반면 집권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 볼커 벡 당사무총장은 "라우의 발언은 그가 독일인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독일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의 대통령임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두둔했다. 소속당 울타리에 안주하며 획일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 각자의 소신을 우선시하는 독일 정치인들의 모습이 한국과 퍽 대조적이다.

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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