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제목소리 기대/최종현 체제 전경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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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치권과 거리두며 “할말은 하겠다”/「이통선정」등 맞물려 향후행보 관심
최종현선경그룹회장(63)이 차기(21대) 전경련회장으로 추대됨으로써 문민정부의 출범과 맞춰 재계에서도 「오너」시대가 열리게 됐다.
오너라는 표현과 함께 강력한 추진력,열띤 토론을 즐기는 최 회장의 개인적 이미지와 맞물려 최 회장 체제의 전경련은 현재 유창순회장의 전경련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27일 전경련회장단 회의에서 원로에 대한 예우차원으로 구자경럭키금성회장의 추대움직임도 있었으나 구 회장은 지난 87년 한차례 회장을 지냈던 점을 들어 고사했고 최 회장은 추대를 받자 『추대해줘 고맙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며 분명한 수락의사를 밝혔다.
최 회장의 전경련에 대해 대부분의 재계 관계자들은 ▲전경련이 다시 재계의 구심점이 되고 ▲1.5세대의 최 회장을 중심으로 한층 단결력이 높아질 것이며 ▲전경련 운영의 민주화와 함께 ▲재계의 이익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이란 쪽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 근래 보기 드물게 19명의 회장단 및 고문이 참석했고 그동안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조중훈한진그룹회장과 김우중대우그룹회장까지 참석,눈길을 끌었다.
이날 회의참석자들은 「참여와 협동」을 많이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회비만 내지말고 전경련의 모임에 자주 참석해야 하며 그동안의 분열양상에서도 벗어나 단합된 재계의 이미지를 다시 회복하자는 것이다.
사실 지난 4∼5년동안 재계는 단결보다 분열의 이미지가 강했다.
격렬한 노사분규와 5·8부동산 매각조치로 대표되는 정·재계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재계의 대부였던 정주영씨가 정치에 참여함에 따라 전경련은 구심점을 잃고 내우외환에 끊임없이 시달려왔다.
또 1세와 2세 경영인 사이의 틈도 나이차만큼이나 넓게 벌어졌다.
재계는 비오너인 유 회장을 내세워 이같은 균열을 꿰매려 했으나 미봉책에 그쳤으며 이에 따라 최근 재계수뇌부들 사이에서 오너체제로의 복귀와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초점은 1.5대세인 최 회장으로 모아졌고 이같은 단합분위기를 바탕으로 최 회장의 전경련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체제의 전경련은 또 「할말은 하겠다」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경련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원장자격으로 「경제계가 바라는 차기정부에 대한 국가경영 건의안」의 작성을 주도하면서 최 회장은 말할 것은 주저없이 말해야 한다며 팔을 걷어붙였었다.
여러문제에 논리정연한 주장을 폈던 최 회장을 통해 재계는 신정부 출범과 관련,앞으로 닥쳐올 한층 강화된 대재벌 정책에 맞서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또 이를 「재계 홀로서기」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이와함께 전경련의 운영방식도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27일 회의에서는 『재계의 분열상을 나타낼 우려가 있다』고 원로들이 만류하는 바람에 비록 거론차원에 그쳤지만 무기명투표에 의한 경선제로 바꾸자는 의견까지 나오는 등 어느때보다 활발한 주장이 개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회장 추대를 둘러싼 의견수렴 과정에서도 정치권과 원로들의 낙점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회원들 사이의 보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진행돼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세와 2세 경영인이 뒤섞여 있고 그룹들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미묘한 상황이기 때문에 원로 중심으로 운영돼온 전경련이 앞으로 어쩔 수 없이 회장단회의 등 보다 공식적이고 민주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통해 운영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최 회장의 등장으로 관심이 쏠리는 것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다. 선경측은 『전경련회장이 되면 눈에 띄는 로비를 펼칠 수 없는데다 보는 눈이 많아 오히려 불리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최창락전경련부회장은 『이동통신과 전경련 회장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최 회장도 두가지를 따로라 생각하기로 입장을 정리한뒤 추대를 수락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최 회장의 추대와 함께 전경련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상임부회장이 누가될지 관심이 크다.
지금까지는 조규하전무나 한국경제연구원의 구석모부원장이 유력하게 꼽히고 있으나,재계 총수들 사이에서 한은총재와 동자부장관을 지낸 현 최 부회장이 고급정보와 날카로운 판단으로 뛰어난 역할을 해온 점을 높이사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앞으로도 장관급 실력자를 외부에서 영입해 부회장에 앉힐 가능성도 크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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