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대국 겨냥 아세안 순방/미야자와 일 총리 4개국에 왜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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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시아속의 일본”… 적극역할 강조/경제원조보다 안보관계 증진모색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일본총리가 취임후 처음으로 11일부터 8일간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미야자와총리는 각국 정상들과 정상회담을 갖는 한편 태국 수도 방콕에서 미야자와 독트린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야자와 독트린은 냉전종식후 일본이 취할 대아시아 정책으로 「아시아속의 일본」을 강조,이 지역에서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천명하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미야자와 독트린은 또 일본과 아세안을 「성숙한 동반자」로 규정하고,일본이 앞으로 이 지역 안전보장 등을 논의할 정치대화기구 만들기에 적극 나설 것임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자와총리는 또 오는 7월 동경에서 열리는 서방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서 아시아지역의 소리를 반영한다는 입장에서 일본의 정치적 역할에 관해 각국 정상들과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미야자와총리는 8일 저녁 아세안 방문단 결단식에서 『아세안 지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본이 행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직접 듣고싶다』고 말했다.
이는 지금까지 경제원조에 편중돼온 일본과 아세안의 관계를 이번 순방을 통해 군축·군비관리 등 안보대화도 포함한 다양한 관계로 구축해 나가겠다는 의욕을 표명한 것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아세안에 대해 경제에 한정된 역할에 만족,정치적 역할이나 영향력 증대까지는 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자신의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대국으로서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고 있다. 그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지난해 단행된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이다.
미야자와총리는 취임이래 아시아 중시외교를 누누이 강조해왔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미국으로 달려갔던 역대총리들과 달리 한국을 첫 방문지로 택했다.
그동안 자위대 캄보디아 파견,일왕의 중국방문 등으로 미야자와총리의 아시아 중시외교는 계속됐다. 이번 아세안 방문도 그의 아시아 중지외교의 일환이자 일본의 정치대국을 향한 행보라 할 수 있다. 아시아는 일본의 뒷마당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일본은 아세안 국가들을 다독거려 일본편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일본에 대해 적개심이 그다지 크지 않다. 동남아지역은 일본상품으로 흘러넘치고 있으며,일본의 투자손길이 뻗쳐 일본의 하청기지화 하고 있다. 베트남·캄보디아에 대한 투자도 일본을 능가하는 나라가 없다.
미야자와총리는 이번 방문에서 부품 및 소재산업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일본이 앞으로 이 지역 국가들의 후견인 노릇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일본으로부터 부품을 들여다 조립생산 하는데 그쳤던 동남아를 부품과 소재산업 기지로 육성,대일 무역적자를 해소시키는 한편 이 지역의 공업자립화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아세안은 80년대 후반 이후 매년 70억달러 전후의 대일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미야자와총리는 개인적으로도 아세안을 방문할 필요가 있다. 도쿄사가와 규빈(동경좌천급편)사건,자민당 최대파벌 다케시타(죽하)파 분열 등 국내문제로 땅에 떨어진 자신의 인기를 그의 장기인 외교로 만회해 보려는 생각이다.
미야자와총리가 이번 방문에서 부닥칠 문제는 ▲말레이시아의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 구성요구 ▲인도네시아의 동경 G7정상회담 참가요청 ▲지난해 5월 정변으로 악화된 태국의 이미지 개선과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에 대한 공동대응 등이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는 미국을 제외한 EAEC 구성을 제창하고 일본이 이에 응해주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므로 미국을 제외한 경제블록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인도네시아는 비동맹회의 의장국으로 비동맹정상들이 결정한 남쪽 세계의 메시지를 도쿄 G7정상회담에 전달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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