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회귀10년] 세계 3위 금융도시 변신 … "당신은 중국인?" 질문엔 "글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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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초등학생들이 교사의 인솔 아래 22일 중국 오성홍기 게양식을 마친 뒤 깃발 접는 법을 익히고 있다. 다음달 1일 홍콩 반환 10주년을 맞이해 홍콩 각급 학교들은 행사준비에 분주하다. [홍콩 로이터=연합뉴스]

홍콩이 중국으로 돌아가던 1996년 세계적 금융센터였던 홍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은 1면에 ‘홍콩의 사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제 곧 홍콩이 활력을 잃고 금융 센터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살아나는 경제=그러나 이 예언은 빗나갔다.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시티 오브 런던이 지난 3월 공포한 세계금융중심지수 서열에서 홍콩이 런던·뉴욕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주권 반환 전의 홍콩은 고작해야 6위에 지나지 않았다. 홍콩은 지난 10년간 아시아의 금융 센터에서 세계 정상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에서 거래금액이 6위권의 외환시장, 시가총액 6위권의 증권시장, 4위권의 황금시장이다. 관리자산 기준으로 아시아에서 2위다. 1997년 6월 말 홍콩 증시에 상장한 중국 내지기업은 83개에 불과했지만 2007년 5월 25일에는 373개 사로 늘어나 홍콩 상장기업 총수의 30%를 차지했다. ‘중국의 힘’이 몰려오면서 홍콩인들은 의식과 생활 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언어도 중국의 힘 반영=일단 압도적인 영어 배우기 추세가 한풀 크게 꺾였다. 주민들이 체제 변화에 따른 언어 변화에 적응하려 하면서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된 푸퉁화(普通話: 중국 표준어) 학습 열기는 계속되고 있다. 홍콩 정부는 반환 이후 각급학교에 푸퉁화 교과를 개설했고 초ㆍ중교 필수과목으로 정했다. 공직사회나 비즈니스, 대외 교류에서도 푸퉁화 사용이 확대됐다.

 발음이 부정확한 홍콩식 푸퉁화가 새로 출현했다는 말도 나온다. 홍콩 푸퉁화 전문학교 장단(張丹) 교장은 “반환 전 홍콩엔 거의 푸퉁화 교육시장이 없었고 대중교통 신호판에도 중문이 없었을 정도였다”며 “그러나 반환 이후 중국의 초고속 경제성장과 함께 푸퉁화 학습 열기가 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 학교는 홍콩 각지에 8개 분교를 차렸을 정도로 성업이다.

 반면 최근 홍콩의 교육계에선 학생들의 영어 수준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홍콩 고교대입시험(HKCEE)의 중국어 과목에서 A평점을 받은 학생은 97년 2.7%에서 2006년 3.4%로 늘어난 반면 영어 과목의 A평점은 0.8%에서 0.7%로 줄어들었다.  

◆취업도 ‘중국으로’=한편 홍콩 시민들은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기회의 확대라는 측면으로도 중국을 바라본다. 중국에 건너가 일자리를 찾거나 여행을 하는 홍콩 주민들이 늘어나고 중국인들의 홍콩 관광이 대폭 확대되면서 쇼핑·요식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것과 함께 중국과 홍콩 간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홍콩 시티대학 졸업생으로 중국 건설회사에 입사한 로육컨은 “홍콩이 과거 흥성했을 때보다 현재 중국에 더 많은 취업 기회와 사업 기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많은 친구가 대륙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반환 직전 홍콩의 중상류층 전문직이 대거 캐나다와 호주 등으로 이민을 떠난 것과 대비된다.

 홍콩 인구통계국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홍콩 시민은 98년 13만3500명에서 2005년 22만8900명으로 늘었고 이 밖에 47만2900명의 홍콩 인구가 중국에서 실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홍콩 정부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렁춘잉(梁振英) 위원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흡인력도 커지기 마련”이라며 “97년 반환이 없었다 할지라도 홍콩은 변화의 흐름에 순응, 중국 성장의 기차에 탑승했을 것이고 통혼, 사업, 관광 등도 인위적으로 가로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체성에서는 “글쎄”=그러나 “내가 홍콩인일까, 아니면 중국인일까”라는 정체성에 관한 의문은 아직 남아 있다.” 홍콩 중원(中文) 대학이 지난해 홍콩 시민들의 정체성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 21.5%는 자신이 ‘홍콩인’, 18.6%는 ‘중국인’이라고 대답했다.

 “홍콩인이지만 중국인이기도 하다”는 답변은 38.1%, “중국인이지만 홍콩인이기도 하다”는 응답은 21.2%로 나타났다. 이중적인 정체성을 보인 답변이 1996년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홍콩대가 1996년과 2006년 사이 홍콩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체성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자신을 ‘홍콩인’으로 생각하는 청소년은 10년 전보다 5.2%포인트 줄어든 28.7%에 그쳤고, ‘홍콩인이지만 중국인도 된다’는 정체성을 뜻하는 ‘홍콩 차이니즈(Hong Kong Chinese)’는 39.4%, ‘중국인이지만 홍콩인도 된다’는 생각이 담긴 ‘차이니즈 홍콩인(Chinese Hongkonger)’은 22.3%로 나타났다.

 영국 통치 시절 더 심각한 정체성 혼란에 시달렸던 홍콩 시민들이 지리· 혈연적으로 가까운 모국 중국에 대한 소속감을 점차 느끼기 시작했지만 이런 변화는 생각보다 두드러지지 않는다.

 ◆중국화와 국제화의 고민=홍콩 자체의 활력을 대표했던 영화는 눈에 띄게 쇠퇴하고 있다. 80∼90년대 수많은 스타와 함께 아시아 극장가를 점령했던 홍콩의 영화산업은 연간 제작편수가 300편에서 50편 정도로 줄어들었다.

 오늘날 홍콩을 있게 하는데 주춧돌이 돼온 자유로운 정보 공개와 의사 표시가 사회주의 체제 중국에 억눌릴 것을 우려해 영화산업 인력들이 대거 해외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홍콩 사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확인되면서 미 할리우드로 떠났던 홍콩의 감독과 배우들이 최근 대거 홍콩이나 중국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영화산업의 제2 전성기가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중국화와 국제화 사이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홍콩의 방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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