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부시·괴로운 베이커/대선패배후 어떻게 지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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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콘트라」시달리며 자서전 준비 부시/「클린턴 여권조사」얽혀 “이중고” 베이커
불과 몇개월 전만 하더라도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은 자신들이 이런 식으로 권좌에서 물러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련과 동구의 붕괴로 유일한 초강대국의 첫지도자로서 세계뉴스 초점이 되었고 걸프전의 승리와 함께 중동평화회담을 주선하여 평화의 기수로 인정받던 때가 불과 몇달전이었는데 이제는 이 두사람의 동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거의 없게 되었다.
모든 초점이 클린턴 대통령당선자에게 쏠려 있고 이들은 조용히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다. 부시가 더욱 괴로운 것은 조용히 물러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대통령시절 저질러진 이란­콘트라사건의 뒷마무리로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 등 관련자 5명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베풀었는데 이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퇴임후까지 골치를 썩이게 되었다.
베이커국무장관은 대통령선거운동중에 클린턴이 학생시절 소련을 여행했던 사실을 들춰내 타격을 가할 목적으로 국무부의 여권 서류철을 뒤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어 명예로운 퇴직은 고사하고 범죄변호 전문변호사를 고용해 자신을 변명할 위치에 놓여있다.
부시대통령의 경우는 베이커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는 연말연시에 소말리아를 방문해 미군병사들과 하루를 보내고 러시아에 들러 옐친대통령과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서명할 계획이어서 퇴임직전까지 대통령직을 만끽했다.
그의 이같은 활동은 패배한 현직대통령의 마지막 남은 재임기간에 활력을 주며 레임 덕현상에서 잠시나마 빠져 나올 수 있는 기회로 생각되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선거직후 노모까지 사망,상당기간 침체분위기에서 지냈는데 이제는 퇴임후의 활동을 계획하는 등 평상의 생활로 돌아오고 있다.
그는 퇴임후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가 자서전을 쓸 계획을 갖고 있으며 몇몇 유력한 단체의 고문직을 맡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고향에 있는 텍사스 A&M대학에다 총 4천2백만달러의 기금으로 부시대통령 기념도서관과 부시행정대학을 세울 예정이어서 이를 위한 모금활동도 벌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은 선거후 거의 공개석상에 얼굴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는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맡고 있으나 매일 아침 간부회의를 차석에게 맡기고 회의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무장관직을 내놓기를 끝까지 꺼려했던 베이커로서는 선거본부장을 맡는 바람에 그의 경력에 오점을 남기게 되었고 차기 공화당 대통령후보로서의 가능성도 멀어졌다.
그를 잘 아는 주변인물들은 베이커가 국무장관직을 떠남으로써 중동평화회담이 사실상 결렬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천부적으로 협상에 재능을 지닌 그가 정치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이번 선거운동 방식을 주로 클린턴의 개인적 약점을 들춰 내는 떳떳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해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어 그의 정치적 장래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방송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96년 공화당대통령후보로 베이커를 지지한 사람은 12%로 이는 댄 퀘일부통령 10%보다 앞섰으나 잭 캠프 도시주택개발장관,밥 돌 상원원내총무에는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클린턴의 여권서류 조사건과 관련해 최소한 이를 명령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사전에 이를 알고도 묵인했을 것이라는 심증이 유력해 이 문제를 둘러싸고 퇴직후에도 청문회와 조사위원회에 불려 다니게 될 신세가 되었다.
한때 공화당의 제2인자로 뚜렷했던 위치가 흔들려 백악관에서도 퀘일부통령 등의 목소리가 더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처지때문인지 최근에는 고향인 와이오밍주에 1주일씩 머무르며 사슴사냥으로 소일하는 등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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