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농업정책 구제 대안제시 주목-장원석저 『농촌을 살리는 길 52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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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농촌은 무너져 가고 쌀마저 개방하라는 외국의 압력이 심해져 가는 이때 새로운 정부의 출범에 때맞춰 농촌을 잘 아는 학자의 글이 책으로 엮어져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농업문제를 사실에 입각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이에 대한 정책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구성은 농업과 환경·수입개방과 대응책·가격과 유통·구조개선과 쌀 정책·농업생산·행정조직과 법제·여성과 복지·농업농민단체·재정과 예산 등 9개장을 모두 52개의 주제별로 나누어 다루고 있으며 부록으로 13대 총선의 농어촌 부문 공약에 관한 저자 나름의 평가를 수록하고 있다.
저자는 자비로 미국과 브라질을 방문, UR반대 활동과 환경회의에 참가하고 쌀 개방 반대교수단을 조직해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등 참여적 지식인으로 오랜 동안 농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오면서 『협동조합연구』『현대농업 정책론』등 많은 저서를 냈다.
이 책에서는 UR·쌀 개방·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기 가입 등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면서도 개방될 경우에 대비해 현실적인 대안으로 농업 구조개선·유기농산물 애용운동의 확대 등을 제시했다. 또 모든 것을 정부의 정책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농민·소비자·기업 등 민간차원에서 해야할 일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천성과 실현 가능성을 함께 담보하고 있다.
또 하나와 장점은 폭넓고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제의 광범함을 볼 때 우리는 새삼스레 저자의 농업·농촌문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뜨거운 정열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의 부록에 실려 있는 13대 총선 농어촌부문 공약이행의 평가 작업은 우리 모두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지난 일에 관한 저자의 집념 어린 연구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가 과거의 정책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소홀히 하는 점에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저자의 작업은 매우 뜻있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저자의 견해나 정책대안에 관해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견해를 가길 수도 있을 것이나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우리 농업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과제들에 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칼럼이라는 형식 때문에 이론적 배경의 설명이 불충분하고 농지문제 등을 다룸에 있어 기존의 주장들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지 못해 독자들이 저자의 견해에 반대되는 내용을 접할 기회가 적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완이 돼야 할 것이다. <정영일-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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