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못 듣는 사람들 위해 수화로 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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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내에서 처음으로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농아(聾啞) 신부가 나온다. 다음달 6일 서울대교구 사제 서품식에서 박민서(39·베네딕도) 부제가 농아로선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사제로 서품된다.

25일 만난 박 부제는 “사제로 서품을 받으면 농아 신자들을 위해 수화로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게 된다”며 기뻐했다. 사실 박 부제가 지금껏 걸어온 길은 말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두 살 때 홍역을 앓았죠. 그때 사용했던 항생제 부작용으로 청력을 잃었어요. 듣지를 못하니 말도 못하게 됐습니다.”

학교도 숱하게 옮겼고, 따돌림도 많이 당했다고 한다. “학교 친구들이 조롱하고, 욕을 하며, ‘너는 희망이 없다. 너는 우리와 다르다’고 했죠.”

그래도 박 부제의 부모는 그를 계속 일반 학교에 보냈다. 성적이 우수했던 그는 경기도의 고등학교 연합고사에 합격했다. 그런데 ‘농아’란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부모는 가슴을 쳤다. 그런데 박 부제는 달랐다. 그는 “농아 학교로 옮기니 오히려 좋았다”며 “따돌림이 없으니 친구들과도 잘 지내게 됐다”고 기억했다. 부모는 “운보 김기창 화백처럼 휼륭한 화가가 되라”며 그를 미술학원에 보냈다. 미술학원의 원장도 농아였다. “신자였던 원장님을 통해 천주교를 알게 됐죠. 세례도 받았어요. ‘신부’라는 봉사하는 삶이 있음을 처음 알았죠.” 그 때가 서울 농학교(구 선희학교 고등부) 2학년 때였다.

이후 그는 경원대 산업디자인과에 합격했고, 졸업도 했다. 한때 직장도 가졌다가 그만 뒀다. 농아인을 위해 한평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제의 꿈을 꿨다.

고등학생 때 농아학생을 위한 주일학교에서 정순오(53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담당 사제) 신부를 만나면서 그의 삶은 바뀌었다. 농아 부모를 가진 정 신부는 그를 친형제처럼 보살폈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서 농아가 신부가 될 길은 없었다. 그렇게 절망하고 있을 때 미국의 토마스 콜린 신부가 내한했다. 그는 미국의 ‘농아 신부 1호’였다. 콜린 신부는 “미국에선 농아도 신부가 될 수 있다”며 그에게 길을 알려줬다.

박 부제는 1999년 미국 뉴욕 근방의 성 요셉 신학교에 입학했다. “영어를 새로 배우듯이 미국 수화를 새로 배웠죠. 한국 수화와 90% 이상 다르거든요. 그러나 학교측의 지원이 끊기면서 ‘신학교를 떠나라’는 편지를 받았죠.”

다시 절망이었다. 그러나 콜린 신부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뉴욕의 성 요한 신학교를 그에게 소개해 줬다. 2000년 옮긴 신학교에선 그를 위해 수화 전문 통역사 2명과 속기사 한 명을 지원했다. 그 비용은 모두 학교 측에서 대줬다. 강의실에서 통역사 2명이 교대로 수화 통역을 해줬고 속기사는 강의 내용을 모두 타이핑해줬다. 그 덕에 그는 무사히 학교를 마쳤다. 쉽지는 않았다.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걸린 유학 생활이었다. 유학 비용은 대부분 정 신부가 지원했다.

2004년에 귀국한 박 부제는 가톨릭대에서 공부를 더 했다. 그리고 2006년 사제 전 단계의 가톨릭 성직자인 부제품을 받았다.
 “‘내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 안에 머문다는 것(요한복음 14장)’을 깨달았습니다. 사제 서품을 통해 내가 작아지고, 예수님이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세계를 통틀어 농아 신부는 14명 뿐이다. 정 신부는 “저도 수화로 미사를 집전하지만 한계가 있어요. 농아인 박 부제가 직접 한다면 그 한계를 뛰어넘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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