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막 내린 『…문예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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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방송드라마 중 가장 높은 수준의작품성을 자랑하던 KBS-1TV의 『TV문예극장』이 슬그머니 폐지됐다.
『TV문예극장』은 지난달 26일에서 20여 일이나 밀려 이달 17일 방송예정인 올해 이 상 문학상 추천작인 신경숙 원작의『풍금이 있던 자리』(연출 이현석)를 끝으로 후속 작품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채 공식적인 발표 없이 편성에서 빠지게 됐다.
KBS는 『TV문예극장』이 전작야외 로케로 편당 평균 1억원 가량의 제작비가 소요되나 소재의 고갈을 면치 못하는 데다 일요일 밤의 프라임 타임에 편성되어 있는데도 시청률은 바닥에 머무르는 등 여러 악조건 때문에 부득이 막을 내리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TV문학관』의 맥을 잇는 드라마로서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 영화와 마찬가지로 필름으로 제작되어오던 『TV문예극장』이 폐지된 것은 밀려오는 상업적 드라마와 외화에 맞서 굳이「우리」작가의 작품만을 고집해오던 방송 드라마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매달 첫주 일요일 밤10시에 선보이던 『TV문예극장』은 지금까지 18편 제작되었으나 당초 KBS의 의욕과는 달리 회를 거듭할수록 방송사와 출연자들이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작품을 회피하고 그 때문에 내부에서조차 제작비 낭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TV문예극장』은 지난10월 한 작품이 나병환자를 다룬 소재가 문제가 되어 불방되는가 하면 11월엔 편성시간이 목요일 밤으로 밀려났다가 결국 흐지부지되는 사례까지 나오는 등 공영방송 KBS 드라마 제작환경의 전반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TV드라마가 전반적으로 불륜과 선정적인 내용, 자극적인 오락으로만 치닿게 되고 더 이상 방송드라마에서 예술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우려마저 증폭되고 있다. KBS의 젊은 FD들은 『당장의 시청률이나 상업적인 이해타산에 얽매이지 않고 지속적인 투자를 한다면 우리 고유의 영상문화로서 오랫동안 수작으로 남을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예술성을 가진 단막 드라마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TV문예극장」이 폐지됨으로써 상업적 드라마 외에는 TV에서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개탄하고있다.
이와 유사한 포맷의 MBC-TV 『베스트극장』도 극심한 소재빈곤과 빠듯한 제작일정으로 최근엔 외국 소설의 번안작을 잇따라 내놓고있어 이러다가는 상업적·말초신경 자극적인 드라마 이외의 수준작은 안방에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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