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기업들 "비정규직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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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는 매장 계산원(캐셔) 등 비정규직 직원 5000여 명을 8월 11일자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19일 발표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들은 주 6일 36시간 시급제에서 주 5일 40시간 연봉제로 근무.보수 체계가 달라진다. 휴가도 연 3일에서 5일로 늘어나며, 의료비와 복리후생 지원도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으로 확대된다. 현대차도 이날 사무계약직 36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7월 비정규직보호법안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속속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은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거나 일부 기업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노사 간 진통이 빚어지고 있다.

◆비용 부담에 고심=신세계의 비정규직 대책은 법률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이상의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근로기간이 2년이 안 된 직원들도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됐고, 연봉 책정에서도 그동안의 근속연수를 모두 인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세계는 증여세 문제에 이어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또 한번 '정공법'을 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세계 측은 "이번 조치로 인해 비정규직 직원들은 20% 이상의 소득 증가 효과를 누리게 됐으며, 회사는 연간 150억원의 비용 부담을 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세계의 조치를 바라보는 다른 업체의 눈길은 복잡하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랜드 계열의 할인업체 홈에버는 유통업계 최초로 정규직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전체 비정규직 3000여 명 가운데 2년 이상 근무한 직원 1100명만을 정규직 전환 대상자로 삼았다. 뉴코아는 아예 캐셔들을 모두 용역직으로 바꾸는 바람에 더 큰 홍역을 앓고 있다. 신세계의 발표에 따라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다른 대형 유통업체들도 머리를 싸매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유통업체 중 신세계 같은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여유가 있는 곳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정규직으로 전환해도 문제=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정규직 전환 직원들과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보이지 않는 차별로 '노노 갈등'이 벌어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홈에버의 경우 전환 직원들은 '직무급제'라는 일반 정규 직원과는 다른 급여 체계를 적용받는다. 회사 측은 임금 인상률이 정직원과 똑같이 적용되며 승급도 된다고 밝혔지만, 이들에게는 상여금이 지급되지 않는 등 차별이 엄연하다. 회사 측은 "직종 간에 임금체계 차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다.

이런 문제는 올 3월 창구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바꾼 우리은행에서도 나타난다. 한 직원은 "정규직으로 바뀌긴 했지만 임금 격차는 여전하고, 전환직은 특정 직군에서만 일할 수 있어 승진에도 제한이 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사측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놔라'는 식"이라는 입장이다.

이현상.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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