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불황|연주회장이 썰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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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공연장이 썰렁하다.
국내 연주자들 공연에서 텅 빈 객석은 통상 있어 오던 일.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비중 있는 해외공연들 마저도 청중들로부터 외면 당하기 일쑤여서 지난날 입추의 여지가 없었던 것과는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한국을 찾은 연주단체나 공연 단들이 무대에서의 감흥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주최측은 초대권을 대량으로 살포해 객석 메우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지난16일 열린 로스트로포비치 독주회의 경우 층 입장객은 2천50명에 불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절반(52%)밖에 채우지 못했다.
또 지난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진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유럽의 정상급 교향악단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유료 입장객 수는 1천명을 밑돌았다.
그런가 하면 현존하는 지휘자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스베틀라노프가 이끄는 구 소련 국립교향악단의 지난1∼2일 역사적인 내한공연도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2회 공연을 통틀어 약 3전장의 티킷 판매를 보이는데 그쳤다. 또 지난 10∼11일 이탈리아의 대표적 실내악단인 이 솔리스티 베네티의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가진 2회 공연 역시 유료관객 수는 1천2백8명에 불과했으며, 지난 10월24∼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2회의 공연을 한 체코슬로바키아 국립오페라단의『라보엠』공연도 티킷 판매는 약38%에 머물렀다.
최근 들어서는 「초대관객으로 자리 채우기」마저도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솔리스티 베네티 연주회의 경우 2천3백 석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첫날은 1천4백64명, 둘 째 날은 1천7백26명이 입장해 겨우 60%의 좌석을 채우는데 그쳤다.
이보다 앞서 지난 5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멜버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경우 유료관객1백57명, 초대관객 8백89명 등 모두 1천46명이 입장, 콘서트 홀의 절반도 못 채워 썰렁한 공연장을 실감케 했다.
공연기획 관계자들은 이같은 공연 불황이 10월부터 두드러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분석하는 불황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불황과 대통령선거에 쏠려 있는 일반인의 관심이 공연장으로의 발길을 멀리하고 있으며, 여기에 작년부터 러시를 이루고 있는 동구권 연주단체들의 빈번한 내한 공연으로 한정적인 공연시장이「갈라 먹기」식으로 변모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게다가 일부 기획 사들의 터무니없이 비싼 관람료 책정 또한 팬들로 하여금 쉽게 공연장을 찾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문화방송 문화사업부 조복행씨는『동구권 연주단체의 경우 다른 해외연주단체들에 비해 개런티가 상대적으로 싸 다는 이점 때문에 너도나도 초청, 자멸을 초래한 것』이라고 분석하고『국내 팬들 또한 음악적인 기량으로 옥석을 가리기 보다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만 최고로 여기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현존 첼리스트 중 최정상으로 꼽히는 로스트로포 비치의 공연에서 유료관객 1천5백59명중 D석(3만원)은 가득 찼으나 S석(12만원)은 절반만이, A석(9만원)과 B석(7만원)은 각21%만이 유료 입장했다는 사실은「공연장의 높아진 문턱」또한 한 원인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한국매니저협회 김용현 회장은『근원적으로 우리문화가 정치·경제에 업혀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문화시장이 형성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티킷 판매망 등 소프트 웨어 적인 문화시장 육성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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